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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태석 (경기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84輯
발행연도
2024.08
수록면
41 - 66 (26page)
DOI
10.31335/HPTS.2024.08.8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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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경연은 왕과 신하가 경사를 강론하고 국정을 논의하는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조선왕조 건국의 주요 세력인 신흥사대부 계층은 성리학 이념 아래에서 왕을 가르치고 제어하여 현실에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경연은 신흥사대부 계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공간이었다.
조선 개국 이후,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던 경연은 세종과 성종 시기를 거치며 점차 학술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을 마련했다.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하고 집현전의 관원에게 경연을 전담시켜 학술적 능력을 강화했고, 성종은 홍문관으로 집현전을 대체하였다. 또한 성종은 경연제도 전반을 재정비하였다. 관직 체계도 정비하였으며, 매일 조강, 주강, 석강의 삼강을 실시하는 1일3강 체제를 확립하였다. 성종 시기부터 정치적 역할을 맡게 된 경연은 2품 이상의 문관과 무관이 특진관으로서 경연에 참여하고, 승정원주서도 참여하여 국정 문제를 경연에서 다루었다.
경연을 주제로 다루었던 이전의 연구들은 이이, 유희춘, 김우옹의 경연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이의 경연일기 연구는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경연이 활용되었음을 증명하였으나, 당시의 정치 충돌을 단순화시켰다는 한계점이 있다. 유희춘의 미암일기 연구는 조선의 양반 관리의 관직생활을 조명하였으나, 유희춘 개인이 경연관으로서 경연에 참여한 부분은 미진하다. 김우옹의 경연강의 연구는 철학 또는 한문학 분야에 치중되었으나, 최근 역사학 분야에서 김우옹의 학술적 소양을 정치에 적용하는 문제에 집중하였다. 김성일의 경연일기는 선조 초기의 경연 및 국정 운영 면에서 추가 대조군을 확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의 손실 상태로 인하여 경연일기를 단독으로 하는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본 논문은 위와 같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을사위훈을 삭제하고 피화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문제를 통하여, 선조 초기의 경연 경향을 확인하였다. 선조는 경연에 가장 열심히 참여한 왕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성종이 성리학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학술적 능력으로 경연을 장악하고, 중종이 기묘사화를 통해 경연을 장악한 것과는 달리, 선조는 쉽게 경연을 온전히 장악할 수 없었다.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선조 초기에 한해서는, 그가 왕조 정통성 측면에서의 약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조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효 사상에 입각한 성리학적 가치를 강조하였으며, 을사위훈을 삭제하고 피화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결과적으로 선조는 이 문제의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약점이었던 정통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선조 초기 경연의 강학 추이
Ⅲ. 선조 초기 경연의 공신삭훈 논의 경향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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