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정석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88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135 - 163 (29page)
DOI
10.15299/jk.2024.7.88.13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포로수용소와 양공주는 한국전쟁을 표상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포로수용소 주변에서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았던 양공주는 ‘방랑자’에 가까운 이방인이었다. 양공주가 머물렀던 공간은 기존의 마을보다 소개민 수용소 혹은 피난민 수용소 주변이 대부분이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설치와 함께 들어온 양공주들은 집단으로 기거하거나 모포 하나를 들고 이곳저곳에서 개별적으로 영업하였다. 이후 포로수용소가 분산되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 주변에 밀집되어 있었던 양공주도 미군을 따라 분산하였다. 주거 공간이 부족했던 저구리 포로수용소 주변에서는 소개민과 양공주가 함께 기거하면서 공생관계를 형성하였다. 용초도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던 용초 마을에서는 마을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근 도시에서 양공주를 데리고 와서는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도록 주선하였다. 지역사회에 낯선 이방인 양공주가 유입되었던 초기 지역민들은 그들을 경원시하였지만, 전시의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지역민과 양공주 사이의 사회적 및 물리적 거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휴전협정 체결과 함께 포로수용소가 폐쇄되면서 포로와 미군, 양공주 등 이방인들은 모두 떠났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포로수용소는 흔적으로, 양공주는 기억으로만 남았다. 거제도와 한산도 주민들이 기억하는 양공주는 엄혹했던 전쟁 시기에 호구지책으로 몸을 팔았던 ‘외지’의 낯선 여성들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양공주’의 등장 배경
3. 거제도 포로수용소 인근의 양공주
4. 저구리 포로수용소 인근의 양공주
5. 용초도·봉암도 포로수용소 인근의 양공주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4-02-090333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