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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찬대 (성공회대학교)
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37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517 - 553 (37page)
DOI
10.31552/jh.2019.12.37.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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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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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27 정전협정을 40여일 앞두고 전국 7개 수용소의 포로들이 일제히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6·18 반공포로 석방사건이다. 특히 전국 탈출 포로 27,388명 가운데 38%에 달하는 10,432명이 광주상무대포로수용소에서 탈주했다. 본 논문은 전국 포로수용소 가운데 가장 많은 포로들이 탈출한 광주상무대포로수용소의 사례 연구를 통해 한국전쟁기 반공포로 수용소 정책과 실태, 현황 등을 살피고자 했다. 또 6·18 포로석방 사건이 이승만과 미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뤄진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음을 논증하고자 했다. 한국전쟁 막바지, 정치·군사적 실리를 최대한 취하고자 했던 이승만과 체제 우위를 적극 선점하고자 했던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포로 석방은 가능했다. 본 논문은 대한반공청년단의 헤게모니 장악 과정도 주요하게 살펴봤다. 또한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석방 포로 처리 현황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이 과정에서 석방 포로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국군에 재입대한 것이 확인됐다. 반공포로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군 입대를 통해 다시 한 번 입증해야 했다. 이는 전향의 진정성을 끊임없이 강요받은 까닭이었다. 전향을 통해 이미 남쪽 정부를 택한 반공포로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심받고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거제포로수용소 소요와 포로 분리 정책
Ⅱ. 광주상무대포로수용소의 실태 현황
Ⅲ. 포로석방의 영향과 이후 반공포로 처리 현황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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