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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5집
발행연도
2023.7
수록면
73 - 109 (37page)
DOI
10.46834/jkmcah.2023.7.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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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1900~1970)은 대구 근대화단 형성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짧은 경력과 전문성의 부족을 이유로 그의 활동과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부족하였다. 이 글은 그의 작품과 대구 근대화단 형성, 사회활동가·정치가로까지 이어지는 서동진의 활동이 그의 향토성에서 나타났다고 보고 이를 고찰하였다. 여기서 향토성이란 미술에 있어 향토색, 향토를 위한 문화·예술적 실천과 그의 사회·정치 활동에 나타난 성격을 포함한 용어이다. 연구를 위해 서동진의 가계와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고, 문헌이나 실물 이미지로 나타난 그의 작품을 소재별 분류하여 풍경화와 인물화에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았다. 또한 서동진의 언급과 활동에서 나타난 향토성을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그의 부모는 달서여학교 설립과 운영에 관여하였고, 두 형은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그는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가풍에서 자랐다. 또한 사회적 관계에서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은 그의 도화 교사였고, 이상화는 그의 친구로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서동진의 작품에는 당대 유행한 향토색의 전형이 나타나면서도 그의 특징적인 소재와 관심이 나타난다. 풍경화의 경우, 지역의 역사적 민속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많이 그렸으며, 지역의 풍토와 정조를 보여주는 날씨나 계절의 소재를 즐겨 그렸다. 또한 이러한 작품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풍경을 단순히 자연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는 인물화에서 지인을 자주 그렸으며 모델의 서사나 문화적 환경을 인식할 수 있는 물건과 배경을 인물과 함께 그렸다. 또한 그는 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여기에서는 지식인이자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로서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927년과 1928년 서동진의 개인전 글에서는 새로운 미술을 찬양하였는데, 이는 쇠퇴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서동진은 1930년부터 1935년까지 향토회를 운영하면서 대구미술사에서 이인성 등 인재를 키웠다. 향토회는 찬조회원의 운영과 연구소를 설치하는 등 조직적인 체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향토회는 같은 시기 일본인 화가 단체인 대구미술협회와 전시와 조선미술전람회의 입상 실적에서 서로 경쟁하였다.
서동진은 근대기 사회를 개조하고 시민을 계몽하려는 사명을 가지고 화가로서 활동하였다. 비록 그의 작품 활동은 10여 년간 짧게 끝나지만, 미술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실천은 1945년 광복 이후 사회운동가, 예술행정가, 정치가로서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서동진의 향토성의 성립 배경과 대구 근대화단
Ⅲ. 서동진의 작품 분석
Ⅳ. 서동진의 향토성 실천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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