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영교 (중원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63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71 - 94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지금까지 『大淸一統志』의 白江?周留城의 위치 비정은 연구자들의 고찰대상이 되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금강을 熊津江으로 인지했다. 『大淸一統志』 卷421, 白江 조에서 白江은 熊津(江口) 동남쪽에 위치했으며, 또한(亦) 大海를 接하고 있다.”라고 하고 있다. 이 표현은 熊津江口가 바다를 접하고 있지만 白江口도 바다를 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두 江이 분명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舊唐書』 百濟전을 보면 663년 劉仁軌가 唐船團을 이끌고,“熊津江에서 白江으로 갔다”라고 하고 있다. 一統志 저자들은 周留城이 全州의 西쪽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周留城은 지금의 전북 扶安이나 古阜이다. 왜 이러한 주장이 나왔을까. 그들이 인지하고 있던 『東國通鑑』(新羅 文武王) 報薛仁貴書 조를 보면 顯經 6년(661)에 이르러 唐軍의 요청을 받고 출동한 신라군이 周留城에서 패배하여 철수한 기록이 나온다. 顯慶 6년은 661년 正月에서 2월 그믐 乙未日(龍朔으로 改元) 하루 전까지를 말한다. 『資治通鑑』 661년 3월 1일 조에 신라군이 古泗에 이르러 백제인들의 공격을 받고 철수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一統志 저자들이 이를 직접 언급한 바 있다(『大淸一統志』 卷421, 泗州城 조). 報薛仁貴書의 顯慶 6년(661) 조의 기록과 『資治通鑑』 661년 3월 1일 기록은 시간적으로 선후가 일치한다. 전자는 周留城이라고 하고 후자는 古泗라고 한다. 『北史』 백제전을 인용했던 一統志 저자들은 백제 中方인 古沙城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周留城=古泗=古沙城이란 등식이 성립된다고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周留城이 全州의 西쪽에 있다고 했던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