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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대영 (공주대학교 박물관)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52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87 - 11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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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성의 성벽에 관련된 기록은 성왕 4년(526)에 수리와 관련된 기록이 처음으로 확인된다. 이 기록으로 보면 웅진성은 성왕 4년 이전에 이미 축조되어 있었기에 526년에 수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다만 웅진성을 언제 쌓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의 축조나 수즙과 관련된 기사를 살펴보면, 천도 초반의 기사에서는 宮室과 관련된 기사가 우선적으로 확인되며, 성왕 4년(526)조에 보이는 웅진성 修葺기사가 확인되기 전에는 웅진성이라는 명칭이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웅진성에 대한 수즙기사 이후에는 웅진성이나 웅천성 등의 명칭이 문헌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편 최근 공산성 성벽에 대한 발굴조사가 성안마을 지역과 동쪽 토성지, 그리고 서쪽 공산정 부근에서 부분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사결과 공산성의 백제시대 성벽은 능선상의 고지대에서는 대부분 편축의 석축 성벽이 조사된 반면, 공산성 내 저지대인 성안마을 지역에서는 협축의 성벽과 더불어 백제시대 문화층이 2차례 걸쳐서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능선상에 축조된 편축의 성벽에서는 그 기저부나 판축부에서 백제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일부 수습되었다. 이와 같은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웅진성인 공산성의 성벽은 웅진천도 직후 성안마을 지역과 영은사 주변 등 저지대에 먼저 축성되었으며, 이후 백제 왕실은 성벽보다는 궁실의 중수에 우선적으로 신경을 쓴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궁실의 중수와 더불어 주변 교통로에 대한 방어성을 축성하고 어느 정도 국가 체제가 갖추어진 성왕 4년(526)에 이르러 웅진성의 전체 성곽을 완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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