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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아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45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97 - 12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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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9년(선조 22) 동인과 서인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여립의 역모가 고변되었다. 정여립의 역모는 기축옥사로 이어졌고 호남의 동인은 정치적으로 몰락하였다. 이후 동인에서 분립한 남인은 억울하게 희생된 동인에 대한 신원(伸?)을 추진하였다. 남인은 정여립의 역모에 대해서 재론하지 않았지만 정개청과 최영경 등의 신원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남인의 영수로 활약한 허목은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정개청에 대해 저술하고 자신이 직접 편찬한 문집 『기언』에 「세변(世變)」과 「유림(儒林)」이라는 항목에 편재하였다. 허목은 「세변」과 「유림」을 통해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희생되었던 것처럼 정개청도 사화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평가하였다. 허목의 정개청에 대한 관심과 평가는 나주 등지의 호남의 사족에게 영향을 미쳤고, 나주의 사족이 주도하여 1690년(숙종 16)에 허목을 배향하는 서원을 건립하였으며 1693년(숙종 19)에 미천서원이라고 사액되었다. 이후 나주의 미천서원은 경향(京鄕)의 남인이 결집하는 거점으로 나주 인근에 부임하는 남인 관리의 방문이 이어졌다. 또한 남인은 1706년(숙종 32)에 허목의 문집 『기언』을 간행하는 사업을 추진하여 1721년(경종 1)에 『기언』을 간행하였다. 미천서원을 방문한 남인 관리는 『기언』을 인쇄하여 소장하고자 하였는데 화순현령에 부임하였던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도 미천서원의 운영과 중수(重修)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기언』을 소장하게 되었다. 미천서원에서 『기언』을 간행하여 보급하면서 남인은 허목의 학문과 사상을 전수하였으며 정개청과 기축옥사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남인의 기축옥사에 대한 인식은 정약용(丁若鏞)에 의해 구체적으로 정리되었다.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동남소사』를 정리하면서 기축사화라고 평가하였다. 황덕길이 편찬한 『조야신필』에도 이러한 남인의 인식이 반영되어 기축사화라고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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