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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55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37 - 80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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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은 南冥 曺植(1501-1572)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그 문인寧無成 河應圖가 자신의 田莊을 서원 터로 제공하여서 처음 德山書院 으로 창건을 보게 되었다. 이 서원의 창설은 남명의 감화를 받은 여러 문인들의 스승을 존모하는 마음과 이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상도관찰사와 진주 목사가 적극적으로 도와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서원은 설립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강학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파 내에서 절대적인 신임을얻고 있는 원장과 원임이 있어서 제대로 운영하여야만, 제향된 인물이추구했던 학문 정신을 체득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교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이 서원의 운영을주도하였던가 하는 문제는 서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매우 중요한 문제의 하나다. 덕천서원은 남명의 만년 강학지에 설립된 것이어서 남명 문인들이대거 참여하여 설립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초기에 서원 운영을 담당했던 이들은 ‘범남명학파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상황은 남명학파가 주도하던 북인 세력이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패퇴함으로써 급변할 수밖에 없었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를 주도하던 가문으로 단성 지역에는 안동권씨, 성주이씨, 합천이씨, 진주류씨, 상산김씨 등이 있었고, 진주 지역으로는 안계‧명석 및 수곡‧단목에 거주하는 진양하씨 사직공파와 시랑공파, 나동의 태안박씨, 소남의 함안조씨 등이 있었다. 물론 이들 가문이외에도 여러 십여 가문이 있지만 원임에 선임된 숫자의 측면에서보면 이들 가문이 덕천서원의 운영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덕천서원의 창건 및 초기 중건에 관여하였던인물의 후손들이거나, 초기 원생록에 이름이 올라 있던 인물들의 후손들이다. 남명학파는 인조반정 이후 30여 년이 지난 즈음 남명집 훼판 사건을기점으로 해서 서인화와 남인화가 이루어지는데 서원의 운영은 남인이주도하였다. 따라서 이들 가문은 모두 남인 가문에 속한다. 그러므로사우의 연원 또한 남인 계통을 따라서, 갈암‧밀암‧대산‧정재‧한주 등과성호‧순암‧번암‧성재 등을 종유한 인물들이 서원 운영을 주도하였다고이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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