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선모 (남경대학교)
저널정보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漢文學報 제44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67 - 102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睿宗 연간(1106-1122)부터 북송문학의 수용을 통해 고려문단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문체 중의 하나로『東人之文四六』에 수록되어 전하는 ‘樂語’와 ‘致語’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문체적 특징 및 창작 배경을 밝히고자 하였다. ‘樂語’는 송나라 때 궁중 연회 중에 배우가 황제에게 올리는 敎坊致語로 문한 담당자가 제작했는데, 蘇軾이 한림원에 재직 당시 지은 6편의 樂語 작품 분석을 통해 그 형식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致語’는 ‘樂語’의 首章에 해당하는 致語·口號만으로 구성된 문체로 문인들의 연회에서 제작되었는데, 歐陽修의 「會老堂致語」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고려전기에는 북송과의 교류에서 고려문단의 중심인물들이 정사나 부사, 또는 서장관 등 사절단원의 핵심 멤버로 선발되어 북송에 파견되었다. 또한 이렇게 파견된 사행원들을 통해 북송문단의 새로운 문체도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는데, 그러한 예로 金富佾, 韓安仁, 金富儀의 북송사행과 그들이 제작한 ‘樂語’ 및 ‘致語’ 작품을 살펴보았다. 金富佾은 肅宗 5년(1100)에 서장관으로 북송에 사행하는데, 이후 예종 10년(1115)경에 ‘樂語’ 작품 「八關致語」를 지어 예종 및 북송의 휘종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예종 11년(1116) 4월에는 「西京龍堰宮大宴致語」를 지었다. 韓安仁도 예종 3년(1108)에 부사로 북송에 사행한 바가 있는데, 예종 13년(1118)경의 咸寧節 연회에서 ‘樂語’ 작품 「咸寧節御宴致語」를 제작했다. 한편 金富儀는 예종 6년(1111)에는 서장관으로, 그리고 仁宗 2년(1124)에는 부사로 북송에 사행한 바 있는데, 인종 7년(1129)경에 구양수의 「會老堂致語」를 의식하면서 문인들의 연회를 기념하는 「尙州宴致語」를 지었다. 이처럼 『東人之文四六』에 수록된 ‘樂語’ 및 ‘致語’는 북송문단에서 새롭게 유행한 문체로 초기의 작품은 모두 북송에 사행한 바 있는 문인들에 의해서 창작되고 있다. 이는 고려문단의 북송문학 수용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한문학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