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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현주 (금정전자고등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8집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1 - 45 (45page)
DOI
10.52271/PKHS.2021.03.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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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국은 백제의 쇠락으로 힘의 공백이 생긴 호남 동부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가라국은 섬진강로를 통해 중국의 南齊에 사신을 보내어 책봉을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임나 4현’과 대사는 지금의 전라남도 동부지역과 경상남도 하동 지역으로 볼 수 있는데, 모두 오랜 세월 동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했던 세력이었다. 이들은 가라국의 대외 교섭을 지지하고 도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대사의 경우, 가라국의 유일한 항구로 기능하게 되면서 ‘임나 4현’ 등 주변 지역을 통솔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백제는 동성왕 시기를 거치면서 대내적인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동성왕 이후 집권한 무령왕은 더 적극적인 대외 공략에 나서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섬진강 유역에 대한 공격이었다.
백제는 먼저 ‘임나 4현’ 지역을 공략하여 손쉽게 성공했다. 이후 백제는 기문을 지배하고 이어 대사를 공격하였으나 쉽게 얻지 못한다. 가라국은 백제의 위협으로 유일한 항구인 대사가 위험해지자 이미 ‘임나 4현’의 이탈로 세력이 줄어든 ‘대사국’을 해체하고 다사진으로 격하시켰다. 하지만, 529년을 기점으로 대사를 백제에 빼앗기고 만다.
섬진강 유역의 재지 수장층들은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든 후 백제의 지방 제도에 포함되어 사라져갔다. 가라국과 백제의 섬진강 유역 쟁탈은 오랜 세월 동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던 섬진강 유역 세력들을 와해시킨 대사건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5세기 전·중반 가라국과 백제의 동향
Ⅲ. 5세기 후반 가라국의 섬진강 유역 진출과 섬진강 유역 집단
Ⅳ. 6세기 전반 백제의 섬진강 유역 진출
Ⅴ. 맺음말: 가라국의 섬진강 유역 상실과 그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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