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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병진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36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47 - 80 (34page)
DOI
10.31218/TRKH.2019.12.1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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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三國史記』고구려본기의 동부여 관계 기사가 후대에 변개된 것인지를 재검토하였다. 고구려 초기에 이미 동부여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적 실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고구려본기의 부여 관계 기사들은 내용 그대로 동부여와의 관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고구려는 일찍이 동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국가적 성장을 이루었고, 이러한 고구려의 동향은 길림 방면을 중심으로 발전한 (북)부여가 고구려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충돌하는 배경이 되었다.
한편 동부여의 실재, 고구려와 동부여의 관계를 규명하였더라도 고구려 건국설화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 건국설화는 현전하는 구조를 갖추기까지 단계적 변화를 거쳤다. 초기 계루부 왕실은 부여 동명을 계승하였음을 내세우면서 건국을 정당화하고, 왕권의 신성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시조의 계보를 천제와 하백으로 분식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일찍이 동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고구려 왕실이 동부여의 건국 전승을 수용한 결과이다. 최종적으로 고구려가 시조 주몽에게 동명의 위상을 부여하고 동명형의 건국설화를 완성하기까지 고구려 시조가 천제자이자, 하백의 외손이라는 인식과 동명을 계승하였다는 인식은 한동안 병존하였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고구려본기 부여 관계 기사의 재검토
Ⅱ. 고구려 초기 ‘동부여’의 실체
Ⅲ. 고구려 왕실의 동부여 건국 전승 수용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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