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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민영 (독립기념관)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2집
발행연도
2020.11
수록면
91 - 12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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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오운현의 올라카하 유역에 1916년 최초로 한인마을이 형성된 것은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의 정치적 변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1917년 볼세비키혁명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변의 결과 연해주 한인사회는 북만주 일대의 중러 변경지대에 새로운 독립운동 근거지를 설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그 사업을 주도한 인물은 이상설을 비롯하여 조성환, 박찬익 등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오운현에 한인마을이 들어섰던 올라카하 지역은 오늘날 올라카하 강 유역으로 짐작된다. 올라카하라는 지명은 우루깡, 올라까 등을 비롯하여 오랍간, 울우간, 우루간 등 다양한 이명으로 나타난다. 그 마을의 명칭은 한인 마을이라는 고유한 의미에서 처음부터 배달촌으로 불렸다.
올라카하 배달촌은 1921년 마적단의 습격으로 오운현 치소가 있던 溫河鎭(현 舊城村) 외곽으로 이주하였다. 또 온하진 배달촌도 1928년 대홍수로 인해 큰 수재를 입고 다시 새로운 장소인 현재의 오운진 동남쪽 외곽지대로 이주하여 안착하였다.
배달촌의 마을 규모는 줄곧 1~2백 호 규모로 유지되어 오다가 만주국 시기에는 50호 아래로 줄어든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배달촌은 완전히 폐촌이 되어 과거 한인이 살았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북만주 오운현의 배달촌은 시기에 따라 이동하면서 세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의 형성 배경에 독립운동이 바탕으로 깔려 있던 만큼, 전 시기를 통틀어 독립운동의 흐름에 동참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북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군단인 血誠團의 활동 근거지였다는 사실과 만주 독립군단의 중러 국경 이동 근거지였다는 사실 등이다. 그뒤 만주국 시기인 1941년에는 한, 중 공동항일투쟁을 전개하던 동북항일연군의 유력한 지도자들인 김책, 이조린 등이 소련을 왕래할 때 이곳 배달촌을 거점으로 삼아도강한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로 보더라도 북만주 중, 러 국경지대에 자리잡은 배달촌은 1945년 해방 때까지 독립운동 근거지로서의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오운현 한인촌의 형성
3. 오운현 배달촌의 변천
4. 오운현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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