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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순섭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9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301 - 3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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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소련의 코민테른과 중국공산당의 운동노선이 급격히 좌경화 되었다. 이에 재만한인사회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 세력의 배척과 중국공산당 합류가 강요된다. 이때 그에 대한 재만한인사회주의자들의 반응과 대응 방법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 원인은 한인사회주의그룹 내지는 개인이 속한 만주 권역간의 사회경제적 차이였다. 먼저 ML파 사회주의 그룹의 활동 영역인 동만 지역의 경우 한인의 이주가 가장 빨랐다. 게다가 주된 생산물인 콩이 국제시장에 수출되는 상품작물이었으므로 농촌 계급분화와 일제 투기자본의 침투가 가속화되었다. 이로인해 같은 재만한인 내에서도 지주와 소작인의 구분이 명확해졌고 그로인한 계급모순이 민족모순 이상의 지상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를 감안한 ML파의 투쟁노선은 재만부르주아지세력의 배척과 중국공산당과의 적극적인 연계를 통한 反제국주의 운동 참여로 귀결되었다. 반면에 서울­상해파 및 화요파 사회주의 그룹이 활동한 권역인 남ㆍ북만주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인 1910년대부터 한인들이 유입되었다. 일제의 차별적 통치에 시달렸던 이주 한인들의 민족의식은 강력했다. 더욱이 남ㆍ북만주에선 논농사 위주의 자급자족적 농업 경제체제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민족해방 의지와 민족모순의 영향력이 컸다. 서울­상해파와 화요파 사회주의 그룹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특징을 반영해 조선연장주의 방침을 유지하고 민족해방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 운동 노선을 지속했다. 이처럼 1920년대의 재만한인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근거지로 삼는 만주권역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충실히 반영한 운동노선을 수립해 나갔다. 이는 조선공산당 해체와 좌경노선 강요에 대한 다양한 대응과 조선공산당 재건설 시도로 실제화 되었다. 재만한인사회주의자들의 중국공산당 합류 이후에도 중국공산당과 동북항일연군 내부에서 한인들의 독자적인 활동과 국내 운동 원조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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