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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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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71집
발행연도
2021.2
수록면
181 - 214 (34page)
DOI
10.18496/kjhr.2021.02.7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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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임진전쟁)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연구가 축적되어 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사료를 국제적인 맥락에서 읽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관련 연구에서는 히데요시의 명칭에 대해서는 깊게 살피지 않았다. 姓으로 알려져 있는 토요토미[豊臣]는 히데요시의 우지[氏]로, 히데요시가 칸파쿠[関白]에 취임하기 위한 근거이자 그 권력의 상징이었다. 또한 히데요시의 묘지[苗字・名字]인 하시바[羽柴]와 토요토미씨는 엄연히 다른 성격을 지닌 표현에도, 임진왜란 연구에서는 토요토미를 코니시[小西]・카토[加藤] 등 묘지와 동일선상에서 다루어 왔다. 그러므로 본고는 豊臣氏가 宣祖實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데 주목하여, 豊臣氏를 일본 외부에서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宣祖實錄』에는 특히 유키나가나 키요마사가 토요토미를 자칭한 문서들이 적잖이 실려 있다. 따라서 이 기록들에서는 豊臣行長이나 豊臣秀吉이라는 글자가 자주 등장한다. 이에 발맞추어 일본과 협상을 시작한 명에서는, 平氏와 豊臣氏를 병행하여 히데요시・유키나가 등을 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여러 기록에서 일본인들이 위와 같이 표기하였음을 그대로 기록하면서도, 조선인들의 발화에서는 豊臣氏를 배제하고 平氏를 칭하여 그들을 불렀다. 당시 조선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불확실한 것에 더하여, 국왕의 자리에는 알맞지 않다고 여겼던 平氏의 이미지가 히데요시에게 덧씌워진 것이다. 더 나아가 조선은 전전부터 전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源平 대립의 연장선상에서 히데요시를 격하시키고, 이에야스가 源氏라는 이유로 그 권위를 인정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새로운 자국의 질서인 豊臣氏를 조선과 명에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명에서는 일본인들이 豊臣氏를 직접 칭한 이후로 그 표현을 따라서 쓰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조선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豊臣氏 사용을 회피하려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임진왜란기에 조선이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 과정에서, 일본이 내세운 변화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양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외교문서상 豊臣氏의 등장과 활용
3. 조선의 豊臣氏 배제와 平氏 활용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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