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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재용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64집
발행연도
2019.5
수록면
141 - 184 (44page)
DOI
10.18496/kjhr.2019.05.6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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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멸망 이후 왜국으로 건너간 많은 백제관인들은 백제에서의 관직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능 및 기술에 따라 왜국의 관위를 받았다. 天智조정은 이들의 신지식을 토대로 국가의 기반을 새롭게 다져나갔다. 天武朝에서도 망명백제관인들의 경험과 능력을 중시하였다. 천지~천무년간 관위제의 개정과 일련의 관위사여는 이러한 백제관인들에 대한 특별한 조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는 持統朝에 백제관인들이 율령제도 하의 새로운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는데 기반이 되었다. 大寶~養老년간은 백제관인 1세대뿐만 아니라 2세대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일본서기』의 편찬과 율령찬정에 새롭게 가담하면서 정치적 입지 또한 기존 백제계씨족만큼 확고해졌다. 이 과정에서 藤原氏집안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는 奈良시대 전반에 걸쳐 유지된다.
망명백제관인 및 그 후예씨족의 諸문제를 고찰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은 神龜원년(724) 5월과 天平寶字5년(761) 3월의 대규모 改・賜姓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신귀 원년에 이루어진 백제관인 후손들에 대한 대규모 사성은 1세대들의 뛰어난 재능을 이어받아 율령관인으로 出仕한 후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 이면에는 후손들의 개인 관위의 상승이나 藤原氏와의 관계 등 신분적・환경적 변화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더욱 중요시 된 것은 천지조에 망명한 1세대들의 위계와 직능이었다. 천평보자 5년의 사성은 아직까지 옛 氏姓을 쓰고 있던 백제관인 후손들을 비롯한 많은 도왜계 씨족들의 改姓요구를 대부분 들어준 것이었다. 당시는 백제뿐만 아니라 고구려, 신라, 당으로부터 건너 온 사람들도 대규모 사성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신귀~천평보자 연간의 대규모 改・賜姓은 결과적으로 여러 씨족들 간의 混融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현존 『新撰姓氏錄』에 다양한 백제관인 후예씨족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각 후손들의 諸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의 개・사성의 시기는 신귀 원년(724)을 시작으로 여러 시기에 걸쳐 이루어지며, 대부분 連姓과 造姓을 받았다. 이들이 개・사성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것은 각 조상들의 백제에서의 관직・재능과 천지조에 왜국관위를 받은 이력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天智朝백제관인의 망명과 관위사여
3. 天武持統朝망명백제관인의 등용
4. 망명백제관인 후손들의 활약과 改賜姓
5. 『新撰姓氏錄』의 亡命百濟官人후예씨족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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