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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현태 (문화재청)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0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179 - 222 (44page)
DOI
10.37331/JKAH.2020.12.10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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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와 그 주변 건물지는 태자와 관계된다는 견해가 많았는데, 근래에 안압지 일대를 태자의 공간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립경주박물관의 남측 일대와 안압지 동편 유적이 태자궁의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이 글은 그동안 태자궁의 후보지로 언급된 유적을 검토하여 태자궁이 어디에 위치하였는지, 그리고 안압지 일대에 조성된 유적의 성격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안압지 서편의 A건물지는 內陣 減柱와 정면의 출입시설에 踏道가 설치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이는 A건물지가 正殿이었음을 알려준다. 안압지 서편 건물지군에는 A건물지를 포함해 中庭을 갖춘 3기의 대형 건물지가 동일한 남북축선 상에 배치되었고, 각 건물지는 회랑과 익랑 등으로 구획되었다. 이러한 건물 배치는 당나라 大明宮의 三朝와 유사하다. 더욱이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에는 헌강왕과 지증대사가 月池宮에서 못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월성 안팎에서 이것이 가능한 공간은 안압지 서편 건물지군 뿐이다. 그러므로 안압지 서편 건물지군은 태자가 아니라 왕과 관련된 공간이며, 월지궁의 영역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월지궁이 태자궁의 이칭이 아닌 왕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또 다른 태자궁의 후보지인 국립경주박물관 남측 일대는 안압지와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이곳에 태자궁이 있었다면 왜 안압지에서 ‘太子’·‘東宮’과 관련된 여러 점의 문자자료가 출토되었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안압지 동편 유적에는 태자궁이 건립되는 679년 무렵에 해당하는 건물지가 3기 밖에 없다. 그 가운데 1기는 門址, 다른 1기는 안압지 서편의 A건물지와 마찬가지로 內陣 減柱의 대형 건물지이고, 나머지 1기는 1×1칸 규모의 소형 건물지이다. 따라서 안압지 동편 유적을 태자궁과 연관시키기도 힘들다. 아울러 7세기 후반 안압지와 그 동편 유적을 구분 짓는 담장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월지궁의 범위는 동쪽으로 안압지 동편 유적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그동안 태자궁의 후보지로 지목되었던 유적에 태자궁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太子’·‘東宮’과 관련된 여러 점의 문자자료가 안압지에서 출토되었음을 감안하면 태자궁이 안압지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주목한 곳이 바로 源花路와 안압지 서편 건물지군 사이이다. 이곳은 아직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지만, 안압지 인근일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 방향을 논할 때 기준이 되는 월성의 동북쪽에 해당하기 때문에 東宮의 동쪽이란 방향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따라서 향후 원화로와 안압지 서편 건물지군 사이를 발굴할 때 태자궁이 위치하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 초록
I. 머리말
II. 안압지 서편 건물지군의 배치 양상과 그 함의
III. 안압지 동편 유적과 월지궁의 범위
IV. 태자궁의 위치 모색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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