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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동락 (대가야박물관)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45輯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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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하대인 헌강왕대과 헌덕왕대의 왕궁 거주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본 것이다. 신라하대의 正宮(大宮)은 왕과 왕비가 거주하는 궁궐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정궁을 중심으로 東宮, 北宮, 南宮등의 방위명을 가진 궁궐이 존재했다. 西宮은 사료상 확인되지 않는다.
헌강왕 때의 정궁에는 헌강왕과 왕비가 머물렀다. 동궁에는 태자가 거주해야 하나, 당시는 태자가 책봉되지 않아 주인이 없었다. 북궁에는 여동생인 金曼이, 남궁에는 남동생인 金晃이 거주했다. 즉, 헌강왕대에는 정궁을 중심으로 남 북궁에 왕의 형제자매가 거주하였다.
헌덕왕 때의 정궁에는 헌덕왕과 왕비가 머물렀다. 동궁에는 태자와 태자비가 거주했으므로, 太子宮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822년(헌덕왕 14) 정월 헌덕왕은 동생인 秀宗을 副君으로 삼았다. 그리고 태자의 보필을 위해 동궁 구역 내에 머물도록 했던 듯하다. 수종이 머물면서 그곳은 月池宮으로 승격되었다. 헌덕왕 때에는 동궁 구역 안에 태자궁과 함께 월지궁이 병존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헌덕왕의 태자는 즉위하지 못하고, 부군이던 수종이 흥덕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면서 월지궁이 동궁의 별칭으로 인식되었다고 여겨진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헌강왕대의 北宮과 南宮
3. 헌덕왕대의 東宮과 月池宮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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