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명진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65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51 - 184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고려 2대 국왕 혜종(무)은 태조 왕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태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장한 무는 최언위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왕건은 통일전쟁 마지막전투인 일리천전투(경북 구미, 936년 9월)의 준비 작업을 무와 박술희에게 맡겼다. 이 전투는 고려군의 승리로 마무리 되고, 무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왕건이 무의 충복으로 선택한 박술희는 지역세력이 아닌 군인 출신이었다. 마침내 무는 943년 5월에 등극하였다. 혜종은 지방제도도 손질하며 나름 치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등극 직후에 원인모를 불치병을 얻게 되었다. 이를 안 이복동생 요와 소는 자신들이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왕규는 이를 혜종에게 밀고했으나 혜종은 이를 참소로 받아 들였다. 입지가 좁아진 왕규는 혜종을 시해하고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보위에 올리려고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945년 9월에 혜종은 병사하였다. 새로운 국왕으로 등극한 정종(요)은 그 다음날에 박술희를 갑곶(강화도)으로 유배 보냈다. 그러자 왕규는 유배 가는 박술희를 정종의 명이라 거짓으로 꾸며 죽였다. 이를 예상한 정종은 자신을 돕기로 약조한 왕식렴의 군사적 지원 아래 왕규를 처단하였다. 박술희는 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따라서 죽어서도 혜종을 보좌한 이가 바로 박술희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