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51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 - 34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신라는 눌지마립간 34년(540)에 실직에서 고구려 변장을 살해한 사건 이후부터 나제동맹을 통하여 고구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소지마립간대의 대고구려 관계는 삼국의 역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주제이므로, 기왕의 연구 성과와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이 시기 신라의 대고구려 관계를 재검토하였다. 우선 소지마립간 초반 니하 일대의 전투 기사를 분석하였다. 481년에 소지마립간의 비열성(안변) 순행에 자극을 받은 고구려는 니하(남한강 상류)를 타고 국원-제천-단양-영월-정선을 통하여 삼척과 울진 방향으로 동해안으로 넘어가서, 미질부(포항 흥해)까지 남하하였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의 지원을 받아 고구려군을 몰아내고 니하에서 격퇴하였다. 신라 소지마립간은 483년과 488년 두 차례에 걸쳐 일선 지역을 순행하였고, 485년에 구벌성(의성)을 쌓고, 486년에는 삼년성(보은 삼년산성)과 굴산성(옥천 이성산성)을 개축하였다. 488년에는 도나성(상주), 490년에는 비라성(미상)을 축조하였다. 한편 484년에는 고구려가 모산성(문경 고모산성)을 공격하자 신라는 이를 막아내었지만, 489년에는 호산성(미상)을 고구려에게 상실하였다. 그렇지만 신라는 494년에 오히려 살수(괴산)에서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우산성 전투와 날이군 순행의 의미를 통하여 소백산맥 이북 지역에서의 신라의 영역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니하 일대에 대한 영역화를 강화하자 496년에 고구려는 우산성(영월 정양산성)을 공격하였고, 이듬해에 신라는 우산성을 빼앗기게 된다. 그렇지만 500년 소지마립간이 날이군(영주)을 순행한 것과 5세기 후반 단양 지역의 신라의 진출이 확인되는 고고학적 정황을 통하여 얼마 후 신라는 우산성을 탈환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소지마립간기의 대고구려 관계는 6세기 중반에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므로, 삼국의 대외관계뿐만 아니라 신라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