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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철학∙사상∙문화 제3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68 - 88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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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은 고대에 본래 미지산이라고도 불렸으며, 지역적으로 각기 미지산이나 용문산으로도 불리다가 조선 시대 이후 점차 용문산이라는 산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용문산 불교의 초전에 대한 확실한 사실은 알 수 없으나 1458년(세조 4)에 지어진 「용문사기」에 의하면 신라 때에 용문사가 창건되었다고 한다. 사나사 창건 당시 조성되었다는 노사노불상과 5층 석탑, 7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양평 금동불 입상, 그리고 8세기 중엽에 제작된 보리사 동종 등등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용문산 불교는 통일 신라 초기에 전래되었다고 하겠다. 보리사 대경대사 비문에 의하면 태조 왕건의 海東無畏士 여엄은 태조 왕건이 중수하게 한 지평 보리사에서 입적할 때 까지 머물면서 용문산 불교를 진작시켰다. 아울러 여엄은 보리사 인근 교종계의 사찰인 듯한 사나사를 창건하여 용문산 불교를 선교 융합적으로 구축하였다. 사나사는 태조 왕건이 포섭한 양근의 호족 함왕이라고 불린 함규의 후원으로 그 사세가 더욱 진작되면서 용문산 불교의 定礎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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