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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26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79 - 219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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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리산의 역사적 성격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名山文化로서 智異山의 正體性을 조선 초・중기의 문헌사료를 통해서 구명한 것이다. 먼저 명산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창출하고 결정한 의미에 의해서 규정・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산은 고정되는 경우보다 변화를 겪는 존재로서 사회적 생산물의 성격을 갖고 있어 문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명산문화는 명산이 의미하는 바의 정체성까지 수렴하는 보다 광의의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 초기 지리산은 太祖 李成桂에게 조선 건국과 관련해서 중요한 신성의 장소이자 그들의 정치적 목적의 정당화를 위한 含意를 지닌 곳이었다. 한편 지리산의 神聖은 卿·大夫·士・庶人이 숭배 대상으로 하였던 山神으로서 信仰性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왕을 비롯한 위정자에게 지리산의 신성은 명산대천으로서 신성에 정치적 성격을 포함한 이중적 함의를 지녔다. 세종 같은 경우 전통문화로서 명산대천의 신성을 인정하면서도 惑信하는 신성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하여 금지하였다. 이처럼 鮮初 지리산의 정체성은 신성에서 신앙성・정치성 등 다양한 함의를 지녔다. 조선 중기 지리산은 지리산권역의 사림들과 수령들에게 仙遊・修養의 공간, 그리고 勳戚政治 개혁을 위한 모색의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럴 때 馬崇祖가 지리산 天皇을 숭배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지리산이 신앙으로서 神聖性을 크게 잃어갔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리산의 정체성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 정치・사회적 함의가 커져갔다. 한편 賊徒 張永己 사건에서 지리산이 인간의 삶 속으로 급속히 편입되는 사회성을 읽을 수 있다. 이 보다 더 사회성과 정치성을 보여주는 사건이 자칭 의병대장 宋儒眞 사건이다. 16세기 말 지리산은 王朝를 부정하였던 송유진을 따르는 한 무리의 활동 공간이었다. 이는 그만큼 지리산의 정체성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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