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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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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29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369 - 41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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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각 계층의 사람들이 지리산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이용해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리산은 영․호남의 여러 고을에 걸쳐 너르게 퍼져 있고 매우 靈驗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신라 때부터 국가에서 중요시해왔던 지리산은 조선왕조의 유교적 산천제 정비에 따라 산신의 封爵이 제거되고, 전라도 남원에 神祠를 세워서 제사지내게 되었다. 지리산 산신신앙에는 불교․도교 등 여러 신앙이 복합되어 있었다. 지리산에는 聖母祠 이외에 여러 신당들이 세워졌고, 봄과 가을마다 삼남지역의 무당과 일반 민중에 의한 기도가 성행하였다. 또 지리산은 골이 깊고 여러 가지 작물들이 풍성하여, 생계가 어려운 사람, 도망자들이 이곳을 찾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조선왕조의 불교 억압에도 불구하고, 지리산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새롭게 들어섰다. 이런 사찰 중에는 지리산 신을 위한 신당을 세운 곳이 많았다. 불교계에서는 聖母天王이나 이외의 상징물에 대해서도 불교와 관련시켜서 지리산에서의 불교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 儒者들은 지리산 신에 대한 별도의 敬拜는 필요치 않다고 여기고 있었고, 무당이나 불교계의 지리산 제례에 대해서는 경멸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리산을 찾은 것은 경치를 즐기고 문학적 호기를 기르거나, 속세에서 찌들렸던 정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일반 민중과 무당, 불교계, 유자층들이 지리산을 인식하고 이용하는 입장은 서로 달랐다. 지리산을 둘러싸고 계층간의 갈등이 폭발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게다가 지리산의 승려․무당이나 골짜기 깊숙한 곳에 사는 민간인에게는 일찍부터 관의 침탈이 가해져서, 이들의 불만이 고조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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