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69 - 215 (4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韓이 정치체로서 중국왕조와 본격적으로 접촉한 시기는 後漢代부터다. 그러나 韓이 중국왕조에 처음 알려진 계기는 前漢時代에 衛滿朝鮮과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왕 準이 한반도 남부로 도망하면서부터다. 그리고 韓이 점차 馬韓․辰韓․弁韓 등의 三韓으로 나뉘어져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세기 이후 한반도 중․남부지역이 중국대륙 및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의 정치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倭가 처음 중국왕조에 알려진 시점은 漢武帝가 조선을 멸하고 漢四郡이 설치된 이후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漢의 사신이 그들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성사된 것은 아니다. 일본열도거주 왜인들이 조선에 설치된 漢의 군현인 낙랑에 來獻하면서부터다. 그런데 漢人들은 처음부터 왜인을 일본열도에 거주하는 주민으로만 한정시켜 이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에 관련하여 중국의 역사기록물에는 부정확한 설명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長江流域 원주민으로서 각지에 이동분포한 민족을 비칭하는 왜인이라는 族名을 일본열도 왜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시켰던 것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의 역사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남겨지게 된다. 한국측 사료에 나타나는 왜란 호칭 역시 漢人들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즉, 한반도인들은 처음부터 일본열도거주민을 倭人으로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일본열도에 거주하며 한반도 남부지역을 왕래하던 사람들에 대한 존재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애초부터 이들을 倭人으로 호칭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왜라는 族名은 韓人과 漢人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비로소 칭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측 사료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일본측 사료에 보이는 韓은 일본열도에 빈번히 이주 또는 교류하던 한반도 남부지역, 특히 김해․부산지역 거주민들이 자신들을 ‘가라’로 불렀는데 나중에 漢王朝와 교섭하게 된 왜인들이 한반도 남부지역민에 대한 漢式 기술용어인 韓이란 글자를 수용함으로써 이후 한반도 전지역 거주민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대시켜 사용하였다고 판단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73)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