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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문종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34집
발행연도
2009.12
수록면
151 - 177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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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부터 다양한 왜구대책을 실시한 결과 태종 9년을 전후하여 왜구의 침입은 감소한 반면 통교왜인은 증가하였다. 조선에서는 통교자의 증가에 따른 치안?경제상의 부담과 왜구문제에 대한 자신감, 일본의 국내 정세에 대한 지식의 확대 등을 배경으로 조선에서는 서계?도서?문인 등의 왜인통제책을 실시하였다. 이와 더불어서 통교왜인이 포소에 도착한 이후부터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왜인접대에 관한 규정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왜인접대규정은 세종 20년(1438)부터 세종 25년(1443)까지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정비되었다. 이 시기는 조선이 대마도와 문인제도, 계해약조를 정약한 시기이다. 특히 문인제도와 계해약조는 조선의 강력한 왜인통체책이 되었으며, 대마도를 조선의 외교질서 속에 편입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같이 왜인접대규정은 왜인통제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정비되었다.
그 후 왜인접대규정은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나 미비점을 보완하여 성종초에 제도적으로 완비되었다. 그 결과 왜인접대규정은 『해동제국기』의 「조빙응접기」에 집대성되어 왜인접대 시에 典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왜인접대규정을 강력한 시행하여 재정적 부담을 줄이려는 조선정부의 의도와 조선으로부터 많은 미두를 지급받고, 무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왜인들의 의도가 부딪치면서 결국 삼포왜란이 일어났다. 그 후 양국관계는 단절과 회복이 반복되면서 점차 쇠퇴해갔다. 그러나 왜인 접대규정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었으며, 접대규정의 많은 항목은 조선후기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왜인접대규정은 왜인통제책과 더불어 양국의 외교관계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전기 한일관계사에서 가지는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왜인의 통제와 왜인접대규정의 성립배경
3. 왜인접대규정의 내용
4.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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