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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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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22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211 - 24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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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위정척사운동의 비조인 華西 李恒老는 평생을 도학 연마에 정진하여 위정척사 이론을 뒷받침해줄 心主理說이라고 하는 새로운 관점의 성리학설을 정립한 名望家였다. 당시 세도가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은인자중하고 있던 그가 딱 한 번 조정에 출사한 것은 1866년 丙寅洋擾 때였다. 그것은 危亂에 처한 나라를 위해서 外臣으로서 奔問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취한 일시적 조치였다. 화서학파가 당시 정국을 주도하는 위정척사학파로서 명실상부한 위상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발판으로 이항로 사후에는 수제자 金平黙에 의해서 각종 斥邪運動이 교사되고 주도됨에 따라 華西學派가 크게 성장하였다. 화서학파의 성장배경은 이항로의 높은 학식과 함께, 세속의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쌓아올린 道學者로서의 명성이 주요한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오영섭은 화서학파의 성장을 주로 풍양조씨 척족과의 연계에 크게 힘입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오영섭의 연구는 화서학파의 성장을 당시의 정치적인 주변정세와 결부시켜 파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연구사적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참신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작업가설’과는 달리, 그것을 증명해 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논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 사건이나 인물 해석에 있어서 일반적인 상식을 등진 지나친 평가의 왜곡현상, 당시 화서학파의 입장을 전해주는 기본 자료에 대한 무시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화서학파의 성장 배경과 관련된 대표적 선행연구 업적인 오영섭의 논리와 주장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논거들이 타당한 지를 조목별로 검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영섭의 논지 전개 도중 도처에서 발견되는 서술상의 모순점들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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