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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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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34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289 - 31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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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계몽기시기 지배계층의 문학이던 한문학에 능숙한 문학 작가 중 위정척사의 중심인물인 重庵 金平黙(1819~1891)의 문학관 형성과 문학인식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중암은 조선왕조가 국권상실의 위기 속에 역사적 격변을 직면하고 있던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중암이 속한 화서학파는 상소문와 擧義를 통한 적극적인 척사 전개를 주장하였다. 중암은 개화기 수구파를 대표하는 역할과 의리론에 독자적인 입장을 철저하고 일관성 있게 추구하였다. 중암은 문학에서 당시 낙론계 문학가들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낙론계 문인인 兪莘煥 · 徐應淳章錫· 金洛鉉· 金允植 등은 근대 계몽기 적극적인 개방을 통해 서양의 문물을 수용하고자 하였지만, 화서학파였던 중암은 오히려 서양 문물의 배척과 문호를 폐쇄하는 수구론을 주장하며 이들과 대립하였다. 중암은 문학의 궁극적 목표를 도덕적 수양에 두었다. 程· 朱가 확정한 윤리는 반드시 실천해야할 규칙임을 주장하였고 문학과 성리학을 분리하거나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도학을 최상의 가치로 여겼고, 문학은 수단에 불과함을 주장하며 과거 정통 성리학자들의 문학관과 같은 궤도를 답습하고 있는바, ‘文藝爲末’로 요약할 수 있어 조선조 일반적 성리학자들의 문학관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의 문학관은 당시 외세 침입에 저항하기 위해 성리학의 道義를 실천하려는 강한 열망을 내포하고 있으며, 보수적· 도학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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