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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洪承賢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0호
발행연도
2018.2
수록면
7 - 43 (37page)
DOI
10.21490/jskh.2018.0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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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時期축조된 燕과 統一秦・漢長城은 衛滿朝鮮西界의 위치와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를 주고 있다. 장성이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방어선이자 국경선이었기에, 장성의 축조・보수 기사들이 당시 국경선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史記』와『三國志』에는 연이 東胡와 朝鮮을 공격하고 탈취한 땅에 다섯 개의 郡을 설치하고 그 외연을 장성으로 둘렀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史記』에 기술된 ‘北族격퇴→ 장성 축조→邊郡설치’라는 기사는 도식에 불과하여 연의 5군이 일시에 설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遼東郡은 조선으로부터 탈취한 2천리 지역에 설치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요동군의 東端, 즉 연과 조선의 경계는 滿蕃汗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동군 예하의 汶縣과 番汗縣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千山山脈부근으로 比定되었다. 통일 후 진은 전국시기 진・趙・연의 기존 장성을 보수하여 통일 진장성을 수축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蒙恬의 의해 수축된 장성은 襄平(遼陽)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 『鹽鐵論』의 진이 沛水를 건너 조선을 멸망시켰다는 기사는 진이 연과 조선의 기존 경계를 넘어 조선의 영역으로 진출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遼東外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진의 障塞가 어디까지 연장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한이 기존 진의 장새를 포기하고 浿水까지 후퇴하였다는 기사가 단서를 준다. 문헌에 등장하는 沛水와 浿水는 같은 강으로 파악되는데, 지금의 鴨綠江으로 보고자 한다. 현재 패수에 관한 유력한 입장은 그것을 압록강, 또는 淸川江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패수를 청천강으로 볼 경우, 한의 후퇴로 발생한 진의 空地上下障이 위만조선 중심부인 大同江바로 위에 위치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청천강을 기점으로 그 이북의 細竹里-蓮花堡文化와 이남의 細形銅劍文化가 구분된다는 점에서도 청천강은 후퇴선이 아닌 최대 확장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현재 遼寧~西北韓지역에 분포하는 연의 유적은 遼西의 建平, 凌源, 喀左, 朝陽등지에 밀집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遼河이동 지역은 동북 대평원과 요동 산지가 접경하는 과도 지역 및 서해 연안지역에 소량의 유적들이 몇 개의 집중점을 중심으로 산재하고 있다. 이것은 연과 조선의 경계가 천산산맥이었던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한편 요동반도 남단에서는 漢式철기가 부장된 漢代무덤 형식인 貝墓가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들 유적의 대분이 기원전 3세기 후반~기원전 2세기말・기원전 1세기 전반의 물질문화의 내용을 갖고 있다. 이것은 武帝이전 이곳이 한의 영향력 하에 있던 영역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燕의 長城의 수축과 五郡의 설치
3. 秦漢의 장성 수축과 古朝鮮西界의 변동
4. 遼東地域의 출토 유물과 고조선의 영역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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