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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3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5 - 11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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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은 그 故地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통치하고자 하였다. 요동 지역 또한 그 관할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안동도호부는 복속된 세력의 자치를 일부 허용하는 기미주로서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하기는 힘든 성격의 기구였다. 안동도호부는 설치 직후부터 고구려 유민의 반발에 직면하였고, 7세기 후반에는 돌궐, 거란의 발흥 등으로 인하여 유지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거기에 8세기 중반 안사의 난 발발로 인하여 상황이 크게 어려워지자 당은 안동도호부를 폐지하며 요동에 통한 지배를 포기한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발해는 요양, 심양 등을 중심으로 한 요동 북부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요동 남부 지역은 고구려 유민 출신인 이정기 일가가 세운 치청 번진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치청 번진은 요동 남부 지역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면서 발해, 신라를 상대로 한 대외 관계와 무역을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9세기 초반 치청 번진의 소멸 이후 요동 지역의 향배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우나, 주요 거점 항구를 중심으로 발해가 진출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재지 고구려 유민 집단들이 당 기미주 통치의 관성으로 인해 산발적인 형태로 흩어져 당과 발해 가운데서 생존을 도모하였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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