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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도훈 (혜안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단군학연구 제40호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5 - 37 (33page)
DOI
10.18706/jgds.2019.06.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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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納土城은 百濟 漢城期에 한강변의 남안의 충적지상에 축조된 土城으로 당시 백제 도성인 河南慰禮城으로 비정된 곳이다. 또한, 풍납토성은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토성 중 가장 오래전에 축성되었으며, 그 크기 또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풍납토성의 시기적인 축성양상을 파악하여 당시 사용되었던 板築技法의 양상이 확인되면 향후 다른 지역에서 축성된 토성들이 어떻게 축성되었으며, 축성된 시기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고에서는 풍납토성의 지금까지 조사되었던 자료들을 정리하여 풍납토성이 어떻게 축성되었는지 파악해 보았다
풍납토성의 축성과정은 최근까지 조사된 양상으로 볼 때 크게 4개의 단계의 공정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각 축성 단계마다 시간적인 흐름도 확인되었다.
풍납토성은 기원후 3세기 중후반 어느 시점부터 하남위례성을 축조하기 위하여 성벽이 들어설 자리를 정하여 기반층을 다양한 형태로 정지 또는 굴착을 하여 基底部를 조성하였다. 일부 구간에서는 기저부에서는 정지된 곳을 단면 ‘U’자형으로 굴착하여 다시 되메워서 다졌는데 이는 중국의 토성 축성기법 중 하나인 ‘基槽’법으로 풍납토성에서도 역시 이 방법이 채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초작업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기저부 상면에 본격적인 축성에 들어가는데, 가장 먼저 사다리꼴 또는 마름모꼴 형태로 성토를 하여 中心土壘를 축성한다. 중심토루는 비교적 일정한 간격으로 성질이 다른 흙을 교호성토 등을 하여 각각의 흙이 최대한 접착되도록 하였으며, 축조된 중심토루의 내벽을 사면상으로 절취하고 그 면에 다시 점성이 강한 흙을 이용하여 덧붙였다. 이렇게 덧붙이는 기법은 이는 중심토루 내벽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심토루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후 내벽과 외벽에는 한 차례 增築이 일어나는데, 기저부와 중심토루를 역시 절취를 하여 덧붙여 나갔다. 기저부에서 중심토루, 1차 증축까지는 기원후 4세기 전반까지 완성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1차 증축은 중심토루의 유실 등에 따라 보수되었는지 아니면 성벽의 확장이 필요한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심토루와 크게 시기차가 나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4세기 중반경에 2차 증축이 시작되는데, 내 · 외벽에 다시 성토되는 시기이다. 내벽에는 뻘층과 식물유기체 목재구조물도 확인되고, 성벽의 끝을 석축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외벽도 다시 덧붙이기를 하였으며, 역시 성벽 끝을 석축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이 시기가 최종적으로 풍납토성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풍납토성은 크게 4단계의 공정으로 축성되었으며, 3세기 중후반부터 축성이 시작되었으며, 중심토루와 1차 증축이 이루어졌다. 이후 어떠한 이유인지는 불확실하나 4세기 중반에는 2차 증축이 이루어져 현재의 풍납토성이 완성되었다. 또한, 각각의 공정 단계마다 당시 最高의 土木技術을 集約하여 축성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풍납토성 성벽에 대한 발굴성과 검토
Ⅲ. 풍납토성의 축성기법 검토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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