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아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9권 제2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327 - 353 (27page)
DOI
10.17068/lhc.2016.11.19.2.327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전라도 고부에 세거하고 있는 의성김씨는 16세기 초에 입향하여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고부를 대표하는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의성김씨가 고부를 대표하는 사족으로 성장하는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김제민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김제민은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웅치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그와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던 아들 金晏은 웅치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金昕은 선조를 호종하였고 후에 宣武原從功臣에 책봉되었다. 이러한 김제민과 그 아들의 의병활동은 의성김씨가 고부지역에서 기반을 닦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김제민이 사망한 지 70여 년이 지난 후, 현종 14년(1573)에 그를 기리는 道溪書院이 김창집 등의 주창으로 건립되었다. 김창집은 청음 김상헌의 후손으로 고부 의성김씨는 청음가문 등 서인 노론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서인 노론은 도계서원 건립과 남고서원 사액 등에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는데, 이러한 후원은 호남 지역의 서인 노론의 학맥을 형성하는데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후 도계서원에 김제민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던 김제민의 동생 김제안과 아들, 조카 등이 추향되면서 도계서원은 고부 의성김씨의 문중서원으로 변화되었다. 숙종대 이후로 지방의 사족이 중심이 되어 건립된 서원은 대체로 유력 문중의 위상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는데 도계서원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문중서원으로 변화되어 갔던 것이다. 1963년 도계서원이 복설되고 金暹과 金習이 추향되면서 도계서원의 문중화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의성 김씨 고부 입향과 김제민의 의병활동
3. 고부 의성김씨와 안동김씨 淸陰家門
4. 도계서원 추향과 호남 노론 문중서원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900-001895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