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사회 (선문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33輯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47 - 74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에서는 〈수조가두〉가 성립되어 중국과 한국에서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수조가두〉의 기원은 수양제가 황하와 회하를 연결한 운하를 개통하면서 지은 〈수조가〉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당나라에 이르러 대곡으로 연주되었는데, 그 중에서 중서의 첫 장이 歌頭였다. 宋 神宗 熙寧 9년(1076)에 소동파가 그것에 노랫말을 붙인 것이 〈水調歌頭, 明月幾時有〉로, 일명 〈中秋〉가 지어졌다. 이것은 쌍조 95자 내외이고, 상편 9구4평운 하편 10구 4평운으로 후대 〈수조가두〉의 전범이 되었다.
소동파 이래 많은 詞人들은 〈수조가두〉에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사고전서’에 수록된 중국의 역대 〈수조가두〉는 477명의 작자가 1,129편을 지은 것으로 집계된다. 내용도 다양하다. 한국의 〈수조가두〉는 고려말기 이제현이 처음으로 지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창작되었다. 한국의 역대 문집을 망라하고 있는 ‘한국문집총간’에는 17명의 작자가 남긴 19편의 〈수조가두〉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되지 않았던 사례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수조가두〉는 소동파에 의해 정립된 형식과 형태를 전범으로 삼아 전승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논의된 〈수조가두〉는 주로 소동파와 주희, 그리고 육유와 관련된 담론이었다. 소동파의 〈수조가두〉는 아우에 대한 그리움이나 임금님에 대한 연군으로, 주희의 〈수조가두〉는 도학적 내용으로 규범화되어 수용되었다. 그리고 육유의 〈수조가두〉는 우국과 애국의 표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수조가두〉는 국내에 유입된 이래로 꾸준히 창작되며 한국인의 미감을 담아 주체적으로 전승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도 산수의 모습에서부터 자연에 담긴 도의 실체, 또는 충절의식이나 旅愁에 이르는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수조가두〉의 성립 과정과 중국의 후대 전승
Ⅲ. 〈수조가두〉와 한국 전승의 맥락
Ⅳ. 나오는 말
【參考文獻】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001-002778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