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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용진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프랑스사학회 프랑스사 연구 프랑스사 연구 제34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33 - 54 (22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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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14세기 전반기 프랑스왕국에서 봉건사회에서 정치사회로 이행의 문제를 1346년의 크레시 전투 패배와 1347년 신분회의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데 있다. 14세기 초만 하더라도 전쟁과 조세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국가체제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된 것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국가체제가 전제하는 전국적 단일성과 체제의 영속성은 정치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전쟁준비를 요구하는 백년전쟁의 시작과 더불어 필리프 6세의 프랑스 왕정은 신분회의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과세의 정당성은 전쟁의 발발에 있었기에 전쟁 발발 전에 준비를 위한 과세는 부당한 정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연패, 특히 1346년 크레시 전투의 패배에서 보여준 왕과 귀족의 무능력함은 정치사회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의 동기를 부여하였다. 1347년의 신분회의 때부터 프랑스 정치사회 구성원들은 왕권 주도의 국가체제를 넘어서 신분회의를 통해 국가체제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신분회의는 과세에 대한 거부가 아닌 과세에 대한 통제를 처음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이는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봉건사회가 정치사회로 변화해 갔다는 것을, 또 정치사회의 관심이 지방주의적 성격을 탈각하고 수도 파리라는 중앙의 정치무대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위기와 급격한 사회변동, 흑사병, 끝없는 전쟁과 민생파탄이라는 파국의 연쇄 속에서 이제 정치에 대해 권리가 없던 자들이 공동의 정치공동체라는 정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정치체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14세기 전반기 전쟁과 정치사회
Ⅲ. 백년전쟁의 시작 : 전쟁의 항구화
Ⅳ. 파국에서 개혁으로
Ⅴ. 나가며 : 정치체에 대한 권리
〈국문초록〉
〈Résumé〉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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