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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용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103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05 - 14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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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했던 필리프 6세 치세(1328-1350)에 나타난 정치적 담론들을 살펴보기 위해 당대에 간행된 네 편의 정치윤리서의 특징들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당대의 맥락에서 조망해보고자 한다. 이 저작들은 필리프 드 비트리가 저술한 『세 송이 백합관』, 장 드 비녜가 번역한 『테오도로스 팔라이올로고스의 교훈』과 『장기로 보는 귀족과 평민의 도덕에 대한 책』, 장 드 마리니가 저술한 『국가와 통치』이다. 그리고 앞의 두 저작은 필리프 6세에게, 뒤의 두 저작은 당시 세자인 장(장 2세)에게 헌정되었다. 이 네 편의 정치윤리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 즉 1) 교회의 영향력에 대해 점점 더 자율적으로 되어 가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관심 증대, 2) 정치적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한 정치공동체의 내재적 구성, 3) 왕권 신성화와는 무관한 정치적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국왕 주도권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물론 정치공동체의 자율성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필리프 4세 치세의 정치담론들이 보여주는 왕의 신체에 각인된 정치체의 신성화, 또는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표현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1330-40년대 정치적 위기들로 짓눌린 프랑스 왕궁에서는 정치공동체의 한 구성원에 불과한 국왕과 정치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실질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이 저작들은 적어도 1350년대 이전까지 프랑스 왕정이 절대주의적 경향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1350년에 즉위한 장 2세는 왕국의 개혁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왕권이 어떠한 주장이나 담론에 찬성이나 반대를 했다기보다 의사소통의 장이나 텍스트 생산의 영역에서 주도권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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