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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근우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1집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33 - 70 (38page)
DOI
10.18496/kjhr.2015.08.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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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海東諸國紀』의 대마도 지도와 대마도 관련 정보를 누가 작성하였는지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신숙주는 ??해동제국기?? 편찬의 책임자이기는 하였지만, 그는 단 한 차례 일본에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외교에 깊이 간여하지도 않았다.
우선 대마도의 형태를 보면「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의 대마도 부분과『해동제국기』의 대마도 지도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형태는 일본의 고지도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특이한 형태로 그려진 대마도 지도를 단서로 하여, 섬의 서쪽에 위치한 淺茅灣을 강조한 대마도의 지리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李藝로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1402년 8월에「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완성되기 직전까지 적어도 세 차례에 걸쳐서 이예는 대마도를 다녀왔다. 처음에는 해적 소굴인 豆地浦(豆知浦), 仁位宗氏의 거점인 和田浦(完多老浦)에 억류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1400년에 대마도 등지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았다. 1401년 겨울에는 예물을 가지고 일기도로 가는 길에 대마도에 이르렀다. 이해부터 1410년까지 10년 동안 해마다 통신사로 三島에 왕래하였다고 하였으므로, 1402년에도 대마도에 갔을 것이다. 이처럼「혼일도」가 완성되는 1402년 8월까지 이예는 적어도 3~4차례 대마도를 다녀왔고, 왜구의 소굴이자 仁位宗氏의 거점인 淺茅灣 내부를 비롯하여 船越의 기능 등을 숙지하고 있었다. 또한『조선왕조실록』의 이예의 啓文에는 3개의 지명이 보이는데, 이 지명은『해동제국기』의 대마도 지도에 그대로 나타나며, 다른 사례와 분명하게 구별된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보면,「혼일도」와「일본국대마국지도」상에 보이는 대마도의 형태, 기해동정 시기와 이예의 계문 및『해동제국기』의 지도에 보이는 지명의 공통성 등은 대마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고 있었던 이예의 지리정보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해동제국기』의 대마도 부분에 관한 한 이예가 46년 동안 수집한 정보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1.「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속의 일본과 대마도
2.『해동제국기』의 지리 정보
3. 대마도와 이예
4. 己亥東征과 淺茅灣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抄錄】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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