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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성현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5집
발행연도
2015.6
수록면
169 - 20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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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일제가 전개한 식민지에서의 인적, 물적 자원의 총동원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의 제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특히 조선 안 노동력 동원은 운동 차원에서 비롯되어 법에 의한 근로보국대로 수렴되고 이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전황이 더욱 불리해지고 일본마저 전쟁터가 되자 일제는 종래의 근로관계 5법령을 종합하여 隊조직과 개인까지 ‘몽땅’ 동원토록 했다. 이른바 정신 총동원에 의한 ‘근로봉사’에서 생산력 확충의 ‘근로협력’을 거쳐 전쟁 수행을 위한 총동원물자의 조달과 국가총동원에 필요한 업무의 ‘근로동원’으로 귀결되었다.
학생 노동력 동원도 일반의 동원과 함께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일반인과 유사하게 근로보국대에 의해 동원되다가 학교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중등학교 이상 학교에 별도로 학교총력대를 두고 이를 통해 군사훈련과 노동력 동원에 종사토록 했다. 하지만 1943년부터 내려진 일련의 학생 동원조치들과 1944년 10월 ‘학도근로령’은 ‘근로가 곧 교육’이라는 교육이념 아래 학교보국대로 일원화하고 원칙적으로 1년 전체를 동원하도록 법제화했다. 이때부터 학교에서의 교육은 완전히 사라졌고, 1945년 전시교육령의 제정과 함께 준군사조직인 ‘학도대’로 귀결되며 병력 동원으로 이어졌다.
조선 안 노동력 동원의 흐름은 경남지역에도 거의 그대로 관철되었다. 1938년 부터 중등학교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학교근로보국대는 점차 늘어났고 이후 국민학교까지 확대되어 1년 동안 수시로 식량 증산과 관련된 피뽑기, 종자채취 등의 작업에 집단 동원되었다. 한편 이 지역에서도 학교총력대가 결성되었고, 1943년부터 학도근로령으로 수렴되던 전쟁 말기에는 아예 학교에서의 수업을 포기하고 통년 동원으로 노동현장에 내몰렸다. 부산은 부두로 말미암아 군수물자의 결전수송을 위한 하역작업에 수시로 동원되었고 군수공장과 포대진지 구축사업 등에도 동원되었다. 전체적으로 이 지역은 후방 군사기지로서 비행장이 많이 건설되었는데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비행장 건설에 집중적으로 동원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勤勞報國隊의 변화와 노동력 동원
Ⅲ. 학교 隊조직의 변화와 노동력 동원
Ⅳ. 경남지역 학생 노동력 동원의 실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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