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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저널정보
사단법인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한국문학과 예술 한국문학과예술 창간호
발행연도
2008.3
수록면
43 - 8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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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궁중정재와 지방관아 교방정재, 민속무용 간에 나타나는 상호교섭 양상을 찾아내어 그것이 갖는 의의와 가치를 궁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정재를 대표로 하는 이러한 춤들이 새로운 국면의 변화를 맞게 되는 조선 후기의 변모 양상도 더불어 살펴보았다. 이는 앞서 살필 정재의 상호?교섭, 변모와는 다른 성격의 변화상이지만 결국 우리 춤의 변화 흐름과, 정재의 시대적 변화 흐름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궁중정재는 예와 도를 중시하는 상층의 춤 예술과 풍자와 흥미위주의 하층의 춤 예술이 상호교섭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춤 예술로 변모?전승되었고 궁중과 교방의 상호 소통하는 독특한 문화적 구조 속(선상기 제도)에 서로 연관성을 갖으며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행된 대표적인 무용으로는, 본래 조선후기 평안도 지방관아 교방정재였던 <배따{(타)라기>곡이 궁중으로 유입된 <선유락>, 선천지방 <항장무[홍문연]>와 궁중정재 <항장무>, 평안남도 성천(成川) 지방의 잡극(雜劇)으로 전승되다가 궁중으로 유입되 재인청(才人廳) 소속 재인(才人)들에 의해 연행된 <사자무>, 민간 가면무 <황창무>와 궁중 <검무>, 탈춤 ‘승무과장’류의 교방 <승무>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정재의 전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조선시대 최말(最末)에 예악을 관장하고 집행하는 기관이었던 장악원의 축소?해체와 여악의 폐지 등으로 인해 여령정재의 극장무대화, 정재의 권번 전승 등 우리 춤의 공간이 과거와는 다른 면모로 변모하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1910년 일제강점 이후부터 정재는 왜곡?굴절된 전승을 거치게 되고 이후 1970년대에는 조선시대 장악원의 후신인 국립국악원에서 이왕직아악부 출신 김천흥 선생을 모시고 50여종의 정재를 재현하여 무대화 작업을 하였으며, 이에 의해 국립국악원에서 본격적으로 정재 재현을 거치면서 현재의 무대상연의 궁중정재도 완성되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 문화는 무형문화재 지정과 함께 더욱 강조 되었지만, 예술 그 자체가 순간적이고 무형화된 것이기에 아쉬움이 많은 채 계승?변모되어가고 있다. 이제 대규모의 관객과 공연자가 분리된 무대에서 나와, 관객과 공연자가 하나가 되는 우리의 전통적 무대를 찾아 자연스레 악?가?무가 어우러지는 전통 예술 본연의 모습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를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궁중정재와 지방관아 교방정재, 민속 무용의 개념
Ⅲ. 지방관아 교방정재의 궁중정재화 양상
Ⅳ. 19세기말 20세기 초, 궁중정재의 변모와 흐름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토론문
토론에 대한 답변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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