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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미선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6집
발행연도
2011.10
수록면
256 - 291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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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衡祥(1653~1733)은 1702(숙종 28)년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제주도 내 각 고을을 순력하면서 여러 행사를 행하였다. 그는 畵工 김남길에게 당시 행했던 행사들을 채색으로 그리도록 지시하였고 이렇게 만들어진 畵帖이 《탐라순력도》이다. 이 화첩에는 정재와 음악의 공연 장면이 담긴 그림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 자료는 18세기 초 제주에서 행해진 공식행사에 수반된 음악과 정재의 연행양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들 자료에 나타난 18세기 초 제주지역의 공식 행사에서 이루어진 공연문화를 고찰하였다.
《탐라순력도》에 수록된 공연 장면은 자연에서 풍류를 즐기는 광경, 노인들을 위한 양로연에서의 가무 연행, 활쏘기대회 행사에서의 음악 연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제주는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정학적으로 조건에 있었지만, 관아의 공연문화는 육지와 동시대적 현상을 띠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성행하던 정재가 제주에 이입된 사실로써 확인된다. 《탐라순력도》를 부각하였으며 이로써 선유락이 1702년에 이미 형성되어 제주까지 전파된 사실을 통해서 선유락이 늦어도 18세기 초에 형성되었음을 밝혔다. 《탐라순력도》를 분석한 결과, 18세기 초에 정재는 주로 무동이 추었고 기녀들은 정재보다는 거문고·가야금·비파·장고·북 등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담당하였으며 악공은 피리·대금 등의 관악기를 주로 담당한 점도 알게 되었다. 여러 연주장면에 보이는 주악 형태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정재를 반주하는 경우에는 대금·피리·비파·북 등의 악기가 주로 쓰였고, 특별히 연회 규모가 큰 경우에는 거문고·가야금·비파 등의 현악기가 추가되었다. 《탐라순력도》의 연주 장면을 분석한 결과 18세기 초 제주에서는 본토에서 정재 반주로 흔히 쓰인 삼현육각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사실도 아울러 알게 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정재 공연과 주악 장면
Ⅲ. 탐라순력도의 공연예술사적 의의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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