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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규익 (숭실대) 姜明慧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사단법인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한국문학과 예술 한국문학과예술 창간호
발행연도
2008.3
수록면
1 - 4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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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이념에 의해 세워진 조선조는 사상적으로 고려 시대에 비해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으나, 합리성을 지향하는 일면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조를 유교적 이상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표방했다. 고려 당악에서 강조된 것은 최고 통치자로서의 임금에 대한 ‘무조건적 송축’이었지만, 유교적 이념국가였던 조선에서 임금의 장수는 이상적인 왕조체제의 영속을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악장이나 지배계층의 시가에 자주 등장하는 ‘송도 모티프’가 형성될 수 있었다. 임금에 대한 송축행위를 예술적으로 제도화 시킨 것이 궁중정재다. 조선왕조가 고려의 모든 것들을 부정했으나, 당악이나 속악 등 고려의 음악은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고려의 노래들이 음탕하다거나 법도에 어그러진다는 비판을 하면서도 그것들을 그대로 썼다. 임금의 불로장생을 송축하려면 상투화 되어있던 선계 이미지를 원용해야 했다. 정재의 공간은 현실과 다른 이상세계다. 그 주역은 옥황상제나 신선들이고, 그들이 활약하던 공간은 선계였다. 군-신-민이 형성하는 왕조나 국가는 그런 이상공간의 밖에 존재하는 현실공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초월한 ‘불로장생의 선계’를 이상공간으로 설정하여 정재 안에 꾸며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메신저인 왕모나 선모를 통해 현실공간의 왕을 불로장생의 보증을 받는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니 정재의 주제나 모티프가 어디에 있든 선모가 등장하는 정재들은 공간의식 상 일단 선계 이미지를 원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고려조와 마찬가지로 조선조의 궁중에서도 많은 예연들을 열었다. 그 잔치들은 대부분 임금을 좌상객으로 모신 풍류적 모임이었다. 그런 모임들에서 공연되던 정재의 핵심 모티프가 ‘임금을 위한 송도’였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왕권을 정점으로 하던 ‘계서적 통치 질서의 재확인’이라는 정치적?문화적 함의를 지니기도 했다. 조선조에서 고려조의 예연문화를 답습하고, 민간의 음악장르까지 도입하여 폭과 깊이를 풍부하게 만든 점 역시 왕권 중심의 통치 질서를 굳히려는 집권세력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였다. 정재가 궁중의 좁은 무대를 탈피하여 정치적?문화적 함의를 지닌다고 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목차

Ⅰ. 서론
Ⅱ. 정재 및 춤사위와 선계 이미지의 지속
Ⅲ. 창작정재들과 선계 이미지의 변주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토론문
토론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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