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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23號
발행연도
2006.12
수록면
205 - 24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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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戶時代(1603-1867) 朝鮮通信使는 王辰倭亂 이후 단절되었던 조선국왕과 德川幕府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12회에 걸쳐 조선통신사는 疏球使節團과 함께 초기 德川幕府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후기에는 대외적으로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일본의 위치를 재조명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이들 통신사 행렬이 江戶를 행진하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고, 에도시대 미술과 대중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테마로 간주되었다. 에도시대 당시 통신사를 묘사한 畵師는 일본의 狩野派와 그들을 추종하던 이들이었고, 후기에는 町繪師들이 많이 등장하여 작품수가 더욱 증가하였다. 통신사 관련 행렬도는 50여 점이 현전하여 조선과 일본 사이 문화교류의 단면을 말하고 있다. 그중 1711년(正德元年)은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개혁으로 에도에서 한일 양국의 國諱분쟁이 일어났던 민감한 시기였으므로, 통신사행렬도는 다른 시기에 비해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1711년(正德元年) 通信使行列을 묘사한 두루마리 그림은 大名이나 幕府의 주문에 의해 그려진 행렬도권 중 대표작으로 한국 國史編纂委員會, 京都高麗美術館, 大阪歷史博物館 소장본이 각각 전해지고 있다. 이 회권은 당시 통신사 행렬 정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록화로서 조선통신사행렬회권의 제작과 관계한 제반 사항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老中 쓰치야 마사나오의 명령으로 對馬藩에서 제직된 繪卷은 에도의 고비키조 가노파를 이끌던 가노 쓰네노부의 제자 俵喜左衛門을 總管監으로 임명하여 江戶의 수준 있는 14-40명 정도의 町繪師가 동원되었다. 작업은 사쓰마의 시마즈家에서 1710년에 제작된 琉球國의 謝恩使 행렬을 묘사한 회권을 老中에게 빌려 摹寫한 것을 참조하였고, 1711년 9월 20일부터 작업을 개시하여 1712년 2월에 獻上이 마무리될 때까지 총 141일이 소요되었다. 이들 회권은 당시 에도시대 최대 규모의 조선통신사 행렬의례를 충실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에도시대 韓日관계에 대한 기록화로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화풍상 특징을 비교한 결과, 1711년 이전에 그려진 통신사행렬도의 화풍과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으며, 1710년에 제작되었던 류큐국사절단행렬도의 화풍과 근사함을 확인하였다. 또한 전술한 세 본과 함께 그동안 쓰시마번 종가에서 舊藏되었던 이유로 1711년 통신사행렬회권로 간주되어오던 福岡市立博物館藏 《通信使行列圖卷》는 화풍상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 적어도 다른 시기의 통신사행렬을 묘사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한편 1711년 통신사행에 즈음하여 제작된 다수 판화집과 조선통신사행렬을 흉내 낸 조선야마가 판화로 제작되었던 점에서 에도시대 막부의 고위층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의 대중문화에도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正德元年 朝鮮通信使의 日本 來往
Ⅲ. 正德元年 朝鮮通信使 行列繪卷
Ⅳ. 正德元年 朝鮮通信使行列圖의 底邊化
Ⅴ. 맺음말
부록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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