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3輯
발행연도
2009.3
수록면
131 - 155 (2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20년대를 전후하여 전개된 민족주의 사학은 초기의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의 실천적 민족주의를 이어받은 정신적 민족주의로 발전하여 간다. 바로 그 중심에 湖岩文一平(1888~1939)이 있었다. 그는 朝鮮學, 朝鮮心등으로 대표되는 湖岩學의 틀을 마련하였는데, 그의 사상은 기존의 문화와 역사를 재구성하여 민중에게 다가선 역사가이자 언론가였다.
이 글은 호암의 글 중에서‘大朝鮮’과‘小朝鮮’사상을 추출하여 그 전환기적 사건으로서 발해 멸망(渤海滅亡)을 설정하여 본 것이다. 여기서 다시 음미하니, 단순한 大小의 개념이 아니라 광활한 것과 좁아진 것의 방향 변이임을 알 수 있다. 발해를 기점으로 해륙 국가로 전개되어 온 한국사의 방향이 대륙과 해양의 두 방향의 제시인 것이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고려가 천명한 발해 왕실과의 혼인 강조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에 대한 강한 비판 정신은 이미 발해의 위상을 한국사 속에 당당히 드러낸 史觀인 것이다. 또 이러한 관점은 이미 조선시대 실학자와 그 이전 고려 당시의 북진정책을 비롯한 대 북방정책의 계승인 것이다. 湖岩은 발해와 신라를 南北國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湖岩역시 남북국시대론을 강조한 사학자임을 간과하곤 한다.
교육과 언론을 통해 문필로서 역사를 민중 속에서 재정립시킨 호암 문일평(湖岩文一平)은 펜(筆)이 무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일러 주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湖岩의 역사인식과 서술
Ⅲ. 大朝鮮과 小朝鮮사상
Ⅳ. 湖岩의 小高句麗
Ⅴ. 맺음말
附記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911-018371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