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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선석열 (경성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7輯
발행연도
2010.7
수록면
9 - 3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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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삼국지』의 읍루 기록과『수서』ㆍ『구당서』ㆍ『신당서』의 말갈7부 기록, 그리고『삼국사기』의 백제본기ㆍ신라본기의 말갈 기록을 서로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중국정사의 경우 6세기 중엽 이전에 말갈은 읍루, 물길 등의 명칭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주의 동ㆍ북부 지역에 거주한 말갈7부의 거주지를 보면 공백 부분이 많았는데, 이는 말갈7부가 만주의 동ㆍ북부의 모든 지역을 차지한 것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7부 외에 사모부 등의 다른 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주지 외의 공백부분은 여전히 남기고 있어 중국 정사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말갈7부 가운데 속말부 백돌부 백산부 등의 군사력을 수천 명이라 기재하여 군사력이 축소 조작되어 있었다. 그리고『삼국사기』의 백제ㆍ신라 양 본기에 보이는 말갈 기록을 검토하였는데, 말갈의 실체에 대해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4세기부터 백제를 먼저 공격한 말갈은 고구려의 위임통치집단인 낙랑과 연합한 집단이며, 5세기 전후에 신라를 공격한 말갈은 주로 고구려와 연합하여 전투를 수행한 것이었다. 이들 말갈은 함경도에서 추가령지구대를 넘어 백제를 공격하거나 동해안으로 신라를 공격하였으므로, 그들은 만주지역에 존재한 말갈7부가 아니라 별개의 집단이다. 그들은 서기 1세기 중엽 태조왕 때부터 고구려의 예속 하에 있었던 함경도 지역의 동예와 동옥저였다. 따라서 이들 말갈은 말갈7부나 독자 세력이 아니라, 고구려에 의해 동원된 것임을 반영한다. 4세기 이후 고구려가 자신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지방의 예맥족을 말갈이라고 차별하여 불렀으며, 중국은 이 명칭을 받아들여 만주의 동부와 북부에 거주한 여러 민족을 지칭하게 되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말갈에 대한 연구 동향
Ⅲ. 중국정사의 말갈7부
Ⅳ. 삼국사기의 말갈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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