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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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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83號
발행연도
2006.9
수록면
39 - 7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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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들은 통일신라 때부터 존재하였으며, 고려전기에는 궁중 내에 10여 명 정도가 심부름이나 소제, 국가의례에 동원되었다. 신분상으로 賤隸에 해당되며, 다만 임무의 특성상 직분을 넘치는 복장이나 총애를 받았지만 특별한 월권 행위는 없었다. 그러나 인종ㆍ의종대 이후 宦者들의 내시직 진출은 특이할 만하다. 정함의 내시직 진출은 아들인 의종을 어려서 보살폈던 것, 의종의 유모를 처로 삼은 것 때문으로, 의종 즉위 후 총애를 받아 왕권을 강화하는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정함은 내전숭반과 권지 합문지후에 임명되었다. 이후 불사를 일으키거나, 뇌물을 받거나 관직을 올려 주는 등 상당한 힘을 발휘하였다.
원간섭기 원나라 황제의 총애로 남반직을 넘어 참직이나 장군에 임명되거나 봉군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 변화과정에서 역할의 정도를 말해주는 것이다. 단순한 궁중 잡역자에서 왕의 근시직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왕명출납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 중요성이 높아졌다. 원간섭기 환관들은 원을 배경으로 고려 내정에 깊이 간여하였다. 이러한 임무와 권한의 증대는 환관들이 궁중 내부의 일을 책임지면서 공민왕 5년 내시부가 성립되었다. 려말의 혼란기 왕의 총애로 권력을 장악하자 점차 사대부들은 조관직 겸직 금지 및 내시부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필요성이 인정되면서 정착하게 되면서 조선시대로 계승되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宦官制의 起源과 전개
Ⅲ. 元干涉期 官界의 進出과 役割 增大
Ⅳ. 恭愍王代 內侍府의 設置와 定着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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