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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진흠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76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145 - 18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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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7⋅29총선에서 혁신정당인 한국사회당의 회을(悔乙) 김성숙(金成淑, 이명 金成璹)은 남제주군의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남제주군은 민주당 공천 갈등이 심했던 지역으로 민주당의 내분이 김성숙에게 유리하게작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제주 지역사회는 지연⋅혈연⋅학연이 선거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김성숙은 고향인 제주 가파도에 신유의숙(辛酉義塾)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는데, 가파도가 속한 대정읍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했고, 대정읍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득표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김성숙은 지역민들에게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약속했기 때문에 희생자 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남제주 지역정치와 지역사회의 특수한상황이 김성숙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 김성숙이 주도한 한국사회당의 이념은 혁신세력 중에서 과하지 않고 온건했으며, 과거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을 계승한 것으로서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무난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김성숙은 극좌가 아닌 중도파 민족주의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이 시기에도 이어나가고 있었다. 특히 4⋅3사건이라는 깊은상처를 안고 있는 제주에서 과하지 않은 혁신을 주장하여 유권자들의 외면을 피할 수 있었다. 김성숙은 약속했던 4⋅3사건의 진상규명에 힘썼고, ‘대동병 환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혁신세력의 통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통합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신유의숙을 통한 교육운동의 경력과 명성, 그리고 이와 함께 김성숙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었던 것이 유의미하게 작용했다. 해방 이후 김성숙은 좌우통합을 위해 노력했고, 극좌와 극우 양극단을 지양했다. 이러한 노력은 제2공화국 시기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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