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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8집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315 - 352 (38page)
DOI
10.46834/jkmcah.2024.12.48.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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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제1공화국 후반기(1957~1960) 국가정책의 선전과 홍보를 담당했고 이승만 정부의 핵심권력기관이었던 공보실에서 운영한 중앙공보관과 한국의집을 대상으로, 1950년대 후반 미술시장에 영향을 끼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이 당시 공보실은 정책 홍보와 대미(對美) 외교라는 목적으로 여러 문화사업을 추진하면서 미술계와 인맥을 쌓았고, 특히 정부수립 10주년을 맞이한 1958년 한 해 동안에는 어느 때보다도 역점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1957년 7월 소공동에서 개관한 중앙공보관은 1~3층을 모두 화랑으로 운영함에 따라, 상업화랑이 부족했던 전후(戰後) 미술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1958년 6월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 공보실이 서화가들을 초빙해 개최한 휘호회는 당시 정부가 표방한 재한(在韓)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사업과 전통미술에 대한 정부인사들의 인식, 그리고 국가가 미술계의 밀접한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앙공보관과 한국의집 모두 내용과 규모는 서로 다르지만, 한국 문화를 내외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건립된 전시장이자 공연장이었다는 점은 유사하다.
미술시장이라고 하면 미술작품이 매개가 되어 판매자와 구매자의 상호이해에 따라 민간에서 가격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감상과 향유의 기회도 제공되는 유통 구조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문화정책이 사회전반에 강하게 작용했던 1950년대 후반, 미술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 정부 역시 그 주체의 일환으로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현상으로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중앙공보관의 경우 처음에는 종합전시관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미술관의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활발하게 개최되었고 신진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는 점, 그리고 서양인들의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과 비평에 일조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1950년대 미술계에 끼친 국가의 역할이 1960년대 이후 미술시장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된다면, 중앙공보관이나 한국의집과 같은 1950년대 전시공연장의 시대성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950년대 후반 공보실의 대미(對美) 활동과 한국미술 홍보
Ⅲ. 1950년대 후반 공보실의 화랑·복합공연장 건립과 운영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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