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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아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제79권 제79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121 - 164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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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성서원은 태인현에 위치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으로 정읍에 편제되어 현재는 정읍시 칠보면에 위치해 있다. 신라 말에 태산 태수에 부임한 崔致遠과 조선 명종대 태인현감에 제수된 申潛을 비롯하여 丁克仁, 宋世琳, 鄭彦忠, 金若默, 金灌을 배향한 서원이다. 문묘에 배향된 최치원을 제외하면 지역의 ‘鄕賢’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배향되었다. 일찍이 태인 사람들은 최치원을 모시는 泰山祠를 짓고 고을의 성황신으로 모셨다. 1615년(광해 7)에 태수와 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최치원과 신잠을 합향하는 태산서원을 건립하였다. 태산사를 태산서원으로 확장한 후, 1630년(인조 8)에 정극인・송세림・정언충・김약묵이 추향되었고, 1675년(숙종 1)에 김관이 추향되었다. 추향된 鄕賢은 태인에 입향한 송연손의 ‘內外孫’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한 이후, 士禍로 정국이 혼란한 시기에 활동한 태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태인의 사족은 태산서원을 건립한 지 80여 년이 지난 1695년(숙종 21)에 請額을 위한 疏會를 열었고, 태인과 각지의 유생 200명이 참여하여 청액소를 작성하였다. 청액에 참여한 유생은 대체로 서인과 연결되어 있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호남의 서인이 결집하여 청액을 요청하자, 예조에서는 ‘疊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사액을 윤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건의하였고 숙종은 윤허하였다. 1696년(숙종 22)에 사액서원으로 지정된 이후 원장에 남구만, 경유사에 조상우로 원임이 구성되었다. 소론으로 활동하는 남구만, 최석정 등의 역할은 무성서원의 위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성서원은 문묘에 從享된 최치원이 배향되었기 때문에 일반 사액서원과 달리 定員이 30명으로 규정되었다. 현재 17세기에 작성된 6종의 院儒生案과 18세기에 작성된 2종의 院生案이 남아 있어서 사액 전후의 講生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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