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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영교 (중원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문물연구 문물연구 제45권 제45호
발행연도
2024.5
수록면
201 - 22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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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 재위 기간(579~632)에 출현한 혜성은 13개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왜군의 위협이 가중되고 있던 시점에 출현한 혜성은 595년 1월(594년 11월[음])의 그것이 유일하다. 혜성이 心大星을 범했는지 따지기에 앞서, 당시 신라인들에게 닥친 냉엄한 현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 「혜성가」는 그들의 함성이기 때문이다. 591-595년 신라는 北·南에서 고구려·倭의 침공·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북쪽에서 남하하여 단양(阿旦城)까지 치고 내려온 고구려군을 신라가 저지하는 상태에서, 남쪽 九州에 주둔한 倭의 침공 위협은 신라인들을 위기로 몰았다. 그 와중인 595년 1월(양)에 혜성이 출현하여 신라에 재앙을 예고했다. 그것은 폐부를 찌르는 불안의 원천이었다. 백성의 불안감을 해소할 의무가 있었던 진평왕은 융천사에게 「혜성가」를 지어 부르게 하는 공개 의식을 하게 하였다. 鄕歌의 가사를 보면 달(月)과 혜성의 상극적인 관계가 보인다. “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라는 구절은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이때는 해가 서쪽으로 진 초저녁이 확실하다. “길 쓸 별 바라보고, 혜성이여 사뢴 사람이 있구나.”라는 구절은 日沒 직후 서쪽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 태양의 빛을 받아 혜성의 꼬리가 낮은 하늘에서 솟구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으 달은(‘達阿羅’) 저 아래로 떠 갔더라. 이 보아 무슨 혜성이 있을꼬.”라는 구절에 대해 김완진 선생은 “혜성이 떠가서 달에 흡입되었다 할 상황이다.”라고 하였다. 환히 밝아진 보름달의 하늘에서 혜성이 사라진 현상과 부합된다.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졌다. 595년 가을 7월(음력) 왜군이 九州에서 철수하여, 신라에 평화가 찾아왔다. 융천사가 거행한 의례를 통해 재앙이 경사로 치환되는 결과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하지만 왜군은 600년에도 침공을 했고, 601년에서 602년까지 九州에 주둔하여 신라를 위협했으며, 이로부터 21년 후인 623년에 신라를 재침하여 뇌물을 받고 물러났다. 607년과 626년 사이에 혜성이 10개가 출현했고, 특히 607년 경우 대형 혜성이 2회 이상 출현했다. 595년(양) 1월 鄕歌가 창작된 이후에 혜성이 출현할 때마다 불리어졌을 것이다. 『삼국유사』의 ‘「혜성가」 진평왕대’ 라는 제목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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