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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5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69 - 9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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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가>는 혜성의 출현과 관련된 향가 작품이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혜성가>의 창작 시기를 기존의 역사 기록과 함께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제공하는 ‘JPL 데이터베이스’라는 천문학적 연구 방법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도출하였다. 지금까지 <혜성가>의 창작 시기를 역사 문헌을 근거로 추정해왔다. 대표적인 견해가 조동일의 594년설과 서영교의 607년설이었다. 이들의 입론은 둘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 문헌과 미항공우주국의 JPL 천문 기록 등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미항공우주국의 첨단 JPL시스템으로 <혜성가>와 관련된 혜성을 도출해 낸 것이 바로 608년에 출현한 Pons-Brooks 혜성이다. 󰡔수서󰡕의 기록에 따르면 이 혜성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이 시기 융천사가 <혜성가>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혜성가>의 창작시기는 혜성의 출현시점보다 사라진 시점이 중요하다. <혜성가>의 기술물을 보면 혜성이 출현하였지만 노래를 불렀더니 별의 괴변이 즉시 사라졌다는 기록 때문이다. 융천사가 혜성을 봤을 때는 멀리서 오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혜성이 사라지는 막바지에 관측했던 것이다. 따라서 <혜성가>의 창작시기는 608년(진평왕 30년)으로 폰스-브룩스 혜성이 지구에 출현한 608년 7,8월 이후로 󰡔수서󰡕기록의 608년 9월쯤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어서 진평왕 30년(608) 전후의 역사 기록과 함께 <혜성가>의 창작 동기를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을 점검하면서 다시 검토하였다. <혜성가>의 창작은 진평왕 30년에 있었던 혜성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여기에서 혜성 출현은 단순한 천문학적인 현상만은 아니었다. 필자는 <혜성가>와 관련 기록이 당시의 국내외적 상황과 정치 현실을 배설해놓은 상징적 기술물로 보았다. 7세기 초엽의 신라는 국내적으로 진평왕이 상부 귀족세력의 견제를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해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왜국의 침략에 대비하여 경계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시기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608년에 갑자기 혜성이 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혜성가>를 살펴보면, ①‘왜적의 침입’, ②‘혜성의 출현’, ③ ‘<혜성가>의 창작과 혜성의 소멸’, ④‘왜적의 환국’의 순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이를 살펴보면, <혜성가>의 제작은 대내적인 정치 갈등보다는 왜적의 침입이라는 대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당시 신라 조정에서는 변방의 봉화와 혜성의 출현을 왜적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혜성가>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혜성가>의 내용을 검토하면서 필자는 1~4행의 ‘舊理’에 주목하여 왜군의 침입은 가요 창작 이전에 있었던 과거적 사건으로 파악하였다. 반면에 5행부터 8행까지는 화랑의 산행과 혜성의 출현에 관련된 현재적 사건으로 보았다. 마지막 9~10행은 혜성은 산 아래로 떠나가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왜군과 혜성으로 인한 문제가 모두 해소된 결과로 보았다. 이를 보면 <혜성가>는 과거의 왜군 침입, 현재적 사건으로 608년 당시의 혜성 출현이라는 불길한 조짐의 발생 여부, <혜성가>의 창작과 가창으로 혜성의 소멸이라는 사건 해결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나라의 근심거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융천사의 <혜성가>는 바로 그와 같은 국내외적 위기를 대처하며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은 노래로 여겨진다. 따라서 <혜성가>는 과거 왜적의 침입과 현재의 혜성 출몰이라는 좋지 않는 조짐을 경계하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진평왕의 정치적 자신감을 드러낸 ‘치세가’로 규정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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