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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나라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64권
발행연도
2024.4
수록면
127 - 15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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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충북 지역의 특수 산송 사례를 제시하고, 정조대 이후 내시의 송사 처리 과정을 조명하기 위해작성되었다. 충주(忠州) 마사(麻沙) 단양우씨(丹陽禹氏) 집안은 17세기부터 충주에 세거하며, 가차산면(加次山 面)⋅금생면(金生面)⋅동량동면(東良洞面)⋅산척면(山尺面) 일대에 분산(墳山)을 조성하였다. 이 분산들은 19 세기에 여러 차례 산송을 겪었다. 그 가운데 산척면에 위치한 우천석(禹天錫)⋅우팽(禹伻) 부자 묘소 산송에내시부(內侍府) 내시(內侍)가 관여한 사례가 확인되어 이를 살펴보았다. 내시 우계범(禹啓範)이 관여한 산송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충주에 세거하던 평해손씨 집안이 관과 결탁하여 우천석ㆍ우팽 부자 묘소에 늑장(勒葬)하면서 시작된 산송은 몇 년 동안 지연되는 양상을 보였다. 충주 마사 단양우씨 집안은 산송을 신속히 해결하고자 내시 우계범의 위세를 활용하여 산송의 흐름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었다. 내시 우계범과 충주 마사 단양우씨 집안이 결탁한 행위는 추후에 문제가 되어 산송에 참여했던 단양우씨 집안사람들이 옥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산송 과정에서 평해손씨 집안이 늑장한 무덤을 파내고 다시 무덤을 조성하지 않아 예전처럼 산소를 수호할 수 있었다. 이 산송은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내시 우계범이 자신의 위세를 이용하여 산송의 흐름을 충주 마사 단양우씨 집안에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내시는 왕의 최측근으로 그 위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지연되고 있던 산송의 판도를 바꾼 것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둘째, 내시 우계범은 정조의 수교(受敎)에 의거하여 산송에 참여하였다. 정조는 재위시절 내시가 송사할 일이 있으면 내시부를 통해 국왕의 윤허를 받은 뒤 송사에 참여하라는 수교를 내렸다. 충주 마사 단양우씨 집안 산송문서에 이를 증빙하는 문서가 남아있어 내시가 산송에 참여하는 절차를 고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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