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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徐希侖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저널정보
미술사연구회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 제45호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119 - 150 (32page)
DOI
10.52799/JAH.2023.12.4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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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근현대 수묵채색화단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미술교육자였던 玄艸 李惟台(1916~1999)가 주목받던 인물화가에서 광복 이후 산수화가로 변모하는 배경과 과정을 분석하고 이유태 산수화의 한국 현대미술사상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이유태는 일본 유학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미전을 중심으로 스승인 김은호의 영향을 받은 미인화를 여러 점 출품하여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 영예를 안겨준 조선미전 제23회 출품작 《人物一對-探求·和韻》은 현재까지 이유태의 대표작으로서 언급된다. 그러나 해방 전인 1944년 징용을 피해 은신하던 탄광에서 산수화에 흥미를 갖게 되고, 해방 이후 인물화는 거의 그리지 않고 우리 산천의 숭고미를 주제로 작고 전까지 산수화가로서 국토의 아름다움을 담는 데 주력하게 된다. 이유태의 산수화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선명한 채색 산수화풍으로 구축된다.
본고는 이유태의 단호한 화목 변화와 함께 채색 산수화풍을 꾸준히 지속하는 일관성에 주목, 이를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화단의 유행을 토대로 사회경제사적 맥락 추적을 시도하였다. 이유태는 광복과 분단이라는 큰 사건을 연달아 겪으면서, 왜색 청산과 민족 문화건설의 필요성에 공감하였고 이는 그의 작업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해방 이후, 조선미전에 출품되던 미인화는 극복해야 할 일제의 잔재로 여겨진 것에 반해, 진경산수가 주목받아 우리 국토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었다. 특히 이유태가 1960년대부터 설악산도를 다작하였다는 점에서 동시기, 분단 이후 금강산을 대신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산으로 부각된 설악산의 개발사와 더불어 정부의 관광산업 육성 정책과 결부하여 밝혔다. 또한, 이유태가 선명한 채색 산수화풍을 선택한 이유를 당시 태동하던 한국 미술시장의 유행을 토대로 고찰하였다. 이유태가 택한 화목 및 화풍, 즉 채색 산수화는 인기 있던 반면 비구상 회화는 수요가 없었다. 이유태는 한국 사회를 추동한 화두 및 시대적 요청에 감응하면서 그의 개인적 취향 또한 고수함으로써 당시 수묵채색화단의 중진 산수화가로 족적을 남겼다.
본 연구는 그간 인물화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작업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수화의 사회문화사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그 미술사적 의미를 부각했다는 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해방 이전, 인물화가로의 성장
Ⅲ. 해방 이후, 산수화가로의 전향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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