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정운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원학회 한국서원학보 한국서원학보 제16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7 - 40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도남서원(道南書院)은 1605년 정경세(鄭經世)가 주도하여 지역 사대부들의 의견을 모으고, 상주목사와 경상감사의 지원을 받아서 낙동강 가에 설립되었다. 상주에 생긴 최초의 서원이고, 으뜸 서원이다. 그러므로 도남서원은 상주지역에서 학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도남서원의 설립을 주도한 것은 정경세였다. 공부는 여럿이 모여 함께 할 때 효과가 크기 때문에 서원을 설립하여 공부하자고 하였다. 정경세는 서원은 지역 사대부가 논의를 일으키고, 지방관이 자원을 지원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렇게 만든 도남서원에서 상주 사대부들과 지방관은 함께 공부하였다. 이후 도남서원은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서원이 설립되고 100여 년이 지난 18세기 전반 변화를 주도한 것은 권상일(權相一)이었다. 권상일은 1710년 과거에 합격하고 관직에 있다가, 1723년 도남서원 원장이 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변화는 이산서원(伊山書院)의 원규(院規)를 도남서원에 적용하였다는 점이다. 서원은 거재유생(居齋儒生)을 유지하고, 거재유생은 강독하고 의리를 강론하는 것을 주로 하며, 거재하면서 과거시험을 준비해서는 안 되었다. 심지어 서원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백일장을 개설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대신 거재유생과 별도로 응강(應講)과 제술(製述)유생을 두어 원생의 역할을 세분화 하였다. 거재유생은 서원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응강과 제술유생은 현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권상일은 서원이 순수학문 연구기관이 되기를 바랐다. 도남서원의 강학은 약화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과거공부를 제한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또 거재유생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돌려 다시 강회를 열고, 상시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정종로(鄭宗魯)이다. 19세기 전반 정종로는 서원에서 강학을 강조하였고, 규칙을 마련하였다. 각 면(面)을 단위로 강회(講會)를 조직하고, 우수한 학생을 중심으로 문목(問目)을 작성하여 스스로 논의하고 고민하도록 하였다. 이 문목은 도남서원으로 보내서 회강(會講)할 때 함께 논의하도록 하였다. 정종로는 강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서원을 세운 본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정경세가 서원을 설립할 때 가졌던 근본적인 지향과 닿아 있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